매달리기

이별, 냉수먹고 정신차리기 #6

by 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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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매달리기를 잘했다. 체력장 시간엔 만점이었다. 하체는 그리 살이 없었고 팔뚝과 어깨 힘이 좋아서 한참 매달릴 수 있었다. 나에겐 매달릴 필요가 없는 너무 쉬운 종목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그런데 다른 체력장 종목과 다르게 매달리기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기본 체력이 안 되는 아이들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헤매곤 했었는데 매달리기에선 의외에 점수가 나오곤 했다. 운동을 못해도 악착같은 아이들이 점수가 잘 나왔던 것이다. 다른 종목들은 움직임이 많고 행동을 최대로 취해서 점수가 나오는 반면 매달리기는 버티기만 하면 되니 체력이 조금 안되더라도 미친 듯이 버티는 아이들 중 좋은 점수가 나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매달리면 되는 줄 알았다. 울거나 화도 안 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고(참고로 이것은 이해가 아니었다. 그에게 더 매달리기 위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음이었다)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기다리고 참으면 상대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집에 가서 꺼이꺼이 울어도 상대 앞에선 굿모닝을 외쳤다. 만나기 전까지 울고 가면 희한하게 그 앞에선 눈물이 안 났다.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울고 다니고 있었으니 막상 상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생각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테지만, 문제는 이 매달리기가 매우 이기적이란 것을, 매달리기 2주 차 때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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