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4
심청이는 진짜 효녀일까.
심청이는 인당수에 왜 몸을 던졌을까.
어릴 때 심청이 동화를 읽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왕을 만난 후 자신의 아비를 찾기 위해 ‘봉사(장님) 잔치’를 여는 부분이었다. 심청이는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그랬으면 다시 환생했을 때 당연히 아버지가 눈을 떴을 것이라 여겼어야 했는데, 여전히 아버지가 장님일 것이라 생각하고 봉사 잔치를 열었다. 이 여자, 아버지가 눈을 못 뜰 걸 알면서도 죽으러 간 것이었다. 자신의 죽음이 아무 쓸데없음을 아는데 왜 인당수에 몸을 바친 것일까. 자살인가?
효는 의무일까. 심청이는 어차피 눈을 못 뜰 것을 알면서도 의무감에 죽으러 간 것일까. 의무감이 얼마나 무서우면 자살까지 이르게 하는 것일까. 말이 자살이지, 타살과 진배없는 잔인한 살인이었다. 효녀라는 타이틀이 뭐라고 그 중요한 목숨을 내놓느냔 말이다. 아니면 효녀여야만 하는 부담감에 바다에 빠진 것일까.
예전 문화센터에서 수필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거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는데 살아계신 어머니에 대한 글이었다. 정년 퇴임한 국사선생님이셨고 여자분이셨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글이었지만 중간중간 원망이 들어가 있었고 내가 느끼기엔 차가운 글이었다. 수업시간에 부모님 생각난다며 우는 분도 계셨고 살아계실 때 잘하자고 이런저런 좋은 얘기하시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의외의 대화가 오간 것은 수업 끝나고 식사 때였다. 난 글이 조금 색달라서 ‘글이 시니컬한 게 재미있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기다리셨다는 듯이 ‘원래는 글 쓰다가 화가 나서 나쁜 얘기도 막 쓰고 싶었지만 사람들 눈 때문에 그리 못썼다’고 하셨다. 아들 둘만 챙기는 어머니와 그 사랑을 다 받으면서도 효도하지 않고 모질게만 구는 두 오빠, 그에 비해 꾸준히 효도를 하는 자신은 딸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보였다. 다른 할머니, 아주머니들도 본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여자분들끼리 식사자리였다). 결정적으로 기억나는 이야기는 ‘엄마와 밀당을 하라’는 한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하셨다.
그녀들은 어른이 되어 나이 든 부모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어 하셨다. 효의 일방적인 분위기에 하고픈 말을 함부로 못하셨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밀당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이날 ‘밀당’이란 단어에 나름 충격을 받고 당황했었다. 남자 친구와의 밀당도 어려운데 엄마와 밀당이라니... 내가 할 깜냥이 아니었다. 그 이후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매우 신기했다. 세대 차이가 나도, 아직도 그대로 인 게 있었다. 그 원인이 '~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효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수업을 들을 당시 나는 엄마와 많이 싸울 때였다. 뒤늦은 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 사춘기라는 것이 부모에게 본인의 독립성을 본능적으로 보여주는 시기라 하였는데, 그게 늦었다. 심지어 독립성뿐만 아니라 그동안 집에 보탰던 도움들이 인정받지 못하자 원망이 되어 표출되고 있었다. 감정이 많이 과격했다. 나 또한 놀랐고 엄마도 놀랐다. 마치 어릴 때 걸렸던 수두는 많이 아프지 않지만 어른이 되어서 걸리면 목숨도 위험하다 하던데,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 객관적으로 생각한 것이 딱 1년 반만 반항하자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부모에 대한 원망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잘못된 의사소통도 문제였다. 1년 반 동안 많이 싸웠다. 싸움의 양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서운함을 토로하는 대화가 아닌 좀 더 좋고 싫음을 분명히 얘기하는 싸움이었다.
1년 반은 지났고 살벌했던 시간도 지났다. 감정은 차분해졌고 더는 싸울 일이 없어졌다. 어떤 해결책이 제시된 건 아니지만(그런 게 있을까?) 마음의 서운함은 사라졌고 아등바등하던 마음의 조바심도 같이 사라졌다. 묘한 ‘대수롭지 않음’이 생겼을 뿐이다.
부모랑 싸운 게 무슨 자랑이냐 싶을까마는 내가 느끼는 효의 의미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로써의 대접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 성인과 성인으로서의 사랑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세련된 소통을 잘 몰라서 싸움이 되긴 했지만, 각자의 모습을 서로 인정하고 그것에서 싹튼 사랑이 효라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 이경순 씨를 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마음이 효라 생각한다. 그리고 꼭 좋아하지 않아도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효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 관계가, 모든 날들이, 사랑이 꽃 피는 나무일 수는 없다 생각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의무적인 효는 서로의 관계를 더 멀리하게 되고 숨 막히게 하는 게 아닐까. 부모와의 관계가 형식적이 것이 아닌, 진심으로 독립적인 성인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효 아닐까?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는 시작이 아닐까.
부모와 싸웠을 때 화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 원룸 시세를 알아보는 거란다. 나 또한 지금 백수의 한 사람으로서 무료 거주자의 임무를 충실히 실행하려 한다. 설거지와 밥, 반찬을 열심히 준비하곤 한다. 예전 돈 벌어드릴 때보다 지금 더 좋아하시는 엄마의 심정을 알 듯 모를 듯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이제 그냥 날 좋아하는 엄마와, 나도 그냥 좋은 엄마가 있을 뿐이다.
PS. 아빠 얘기가 빠져 갑자기 아빠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위에 뒤늦은 사춘기 때는 엄마와의 다툼만 있던 터라 굳이 아빠를 거론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 안세환 씨도 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한다. 술만 조금 덜 드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