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15
어릴 때 소복하게 핀 국화를 보면 소보루빵이 생각났다. 좀 더 커서는 커다란 컵케이크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색깔의 국화 화분을 보고 있으면 딸기 맛 컵케이크, 레몬 맛 컵케이크, 레드벨벳 컵케이크가 떠올라,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기분이 좋았다.
가을이다. 지난해 모종으로 남겨두었던 국화꽃화분에 꽃이 가득 폈다(부모님은 꽃 농사를 지으시고 나는 한편에서 작은 꽃가게를 하고 있다). 추석을 지내고 나니 날씨가 제법 서늘하여 식욕이 더 돋았다. 어느 논문에선가 가을이 되면 생리학적으로 실제 식욕이 더 생기고 더 먹는다는 글을 봤다. 사계절 내내 잠들지 않는 식욕이지만, 유독 가을이 되면 나 또한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나는 가을을 많이 탄다. 해가 짧아져 저녁이 줄어드는 가을이 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예전 회사를 다닐 때 증상이 나타났다. 그때 우울한 기분을 푸는 것은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었다. 가리지 않고 음식을 즐기다 보니, 입사하고 1년 만에 10kg이 찌고 말았다. 그 후로도 무게는 줄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매일 맛있는 것을 먹어도 허기졌다. 심리학 책 조금만 뒤져보면 알 수 있는, 마음의 허기였다. 뭐가 그리 불만이었는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무던히도 열심히 먹어 치웠다. 살이 점점 붙으니 이런저런 다이어트를 해도 그때뿐이었다. 금세 허기에 시달려 또다시 먹기 바빴다.
그러던 어제, 노란 국화꽃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허기를 느끼는 것은 사랑, 돈, 명예 이런 것들보다 ‘감성’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국화꽃만 봐도 행복했던 그 감성, 기분, 감정 등을 어느 때부터인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감성을 누릴 만한 정신이 없었다. 맨 날 바빴고 생활에 치였다. 안 바쁠 때도 마음은 조급했다. 그때부터, 배가 고팠다.
식욕이 폭발하는 요즘,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그리고 언제나 실패하던 다이어트 방식을 바꾸어야겠다. 식단을 바꿔야겠다. 고기와 해산물 대신, 소보루빵 국화꽃과 컵케이크 국화꽃으로 차려보고 싶다. 감성 다이어트라고 칭해야 하나? 더 이상 살찌기 싫다. 더 이상 허기지기 싫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던 어릴 때의 그 묘한 마음을 다시 한번 가져보고 싶다. 그때 그 마음으로 배 터지게 한 상, 느껴보고 싶다.
역시 서늘한 가을엔 국..밥... 아니 국화가 생각납니다. 소머리 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