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16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는 인터넷 유행어가 떠오른다. 이번 생은 결혼도 못할 것 같고, 자식도 없을 것 같고, 돈도 없을 것 같다.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 나이 서른아홉, 겨울이 오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자주 드는 요즘, 자존감이 마구 떨어진다. 일도 손을 놨다. 2월에 잠깐 닫은 가게를 아직도 못 열었다. 글 쓴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누웠다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이다. 글은 개미 똥구멍만큼 써놓곤 집중력을 올린다며 마트의 싸구려 단과자만 잔뜩 먹었다. 3kg이 찌고 말았다.
밖에 나가는 일은 멍멍이들 산책시킬 때가 대부분이다. 강형욱 조련사의 말처럼 개 주인의 가장 좋은 직업은 ‘백수’라더니, 맞다. 멍멍이들이 날 너무 좋아한다. 하루 2번이나 산책을 시켜주니 나만 보면 환호성이다. 이들의 환호성으로 그나마 자존감이 연명된다.
나는 결혼을 안 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솔로를 자처하는 사람들처럼 마음에 믿는 구석도 없다. 그냥 당연히 하는 줄 알았다. 결혼의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실, 결혼 두렵다. 그러나 혼자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편도 갖고 싶고 아이들도 갖고 싶고 내 가정을 갖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대단한 건 없지만). 그러나 결혼만큼은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 원인이 나의 부족함 같아 자존감이 떨어졌다.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심리학 책이나 철학책, 잡다한 에세이들을 읽었다. 위안받는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단순히 머리로 이해한다고 자존감을 다시 가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자동차나 돈, 옷처럼 소유하고 싶다고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 같다. 이 녀석은 ‘결혼’, ‘남편’, ‘아이’, ‘사랑’처럼 소유의 성질이 아닌, 다른 녀석이다.
예전 낮 2시에 89.1 라디오에서 ‘해열제’라는 심리상담 코너를 들은 적이 있었다. 상담해 주시던 분이 ‘자존감은 무조건 100%로 생각하라’고 이야기하였다. 심지어 사람들과 자존감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파트 몇 평 사느냐 물어보는 것처럼 유치한 것이니 그냥 다 100%라고 여기는 게 좋다고 하였다.
자존감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많고 적음을 내가 따져볼 필요가, 따져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나를 믿는 느낌은 그냥 100%인 게 맞다. 여기엔 머리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믿는 거다.
그런데 머리론 100%로 믿어도 감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해만으론 해결되지 않았다. 뭔가 자존감을 움직이는 것은 머리가 아닌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생각난 것이 ‘용기’이다.
세상에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하였다.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만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 하였다. 용기라는 것은 행동으로 표현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다고 하여 용기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용기는 행동할 때 용기인 것이다. 이 녀석 또한 사랑이나 자존감처럼 소유의 성질이 아닌 묘한 존재이다.
이번 생은 그른 것 같은 요즘, 내게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내가 무지했음을 인정하는 용기, 사랑할 줄 모름을 받아들이는 용기, 만약 사랑이 온다면 소유의 마음을 버리고 마음껏 사랑할 용기, 그리고 혼자 살 용기.
정말 늙어서도 혼자 살 수도 있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겠다.
혼자 살아도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이제 가게 열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