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력 뿜뿜 ‘김복동’

영화 리뷰 김복동

by 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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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리뷰를 쓰기 힘들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 옆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은 영화 시작부터 시종일관 훌쩍였다. 별거 아닌 너스레 장면이나 일반적인 장면에서도 끊임없이 훌쩍여, 코감기가 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조금 거슬렸다. 무척 마음이 아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나도 결국 오열하게 되었으니까, 지점은 달랐지만). 그러나 영화 주인공 김복동 씨를 안타까운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나는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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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한 그랬다.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화내야 할 땐 화내고, 웃어야 할 땐 웃고, 울어야 할 땐 울고. 덤덤하게 상황들에 대해 표현하였다. 잔잔한 음악 말고는 감정적인 장치가 많지 않았다. 곰곰이 영화를 되돌려 보면 김복동 씨가 우는 장면은 한 번 나왔던 것 같다. 감사의 편지를 받고 지긋이 조용히 우는 장면, 그 외에 모습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동정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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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야만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지금의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 것은, 모두 ‘해야만 하는 것’들 때문이라고 탓을 하며 살고 있다. 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에 붙어야 하고, 취직을 해야만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 것에서 멈춘 후, 돈 버는 것도 멈췄고, 일하는 것도 멈췄다. 해야만 하는 일 중 매우 중요한 ‘삼 시 세끼’ 또한 멈추고, 대중없이 산다(안 먹는 것은 아니고 대충 살아갈 정도만 먹는다). 그러던 중 영화 속 김복동 씨의 ‘해야만 하는 것’을 마주치고 난 후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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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복잡한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를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든 친절한 영화다. 단호히 ‘사죄하라’를 외치는 김복동 씨의 모습과 화해 재단 오픈식을 저지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잔뜩 헤집어 놓았을 뿐이다. 나이차는 많이 나지만, 묘하게 오버랩되는 김복동 씨와 대학생의 모습에서, ‘나 왜 이러고 사나’하는 말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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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존재하는 힘, 존재력’에 압도당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존재력’이란 단어는 실제 없다. 떠도는 말로 ‘주위의 시선을 끄는 의미’ 정도로 쓰이긴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려는 ‘존재력’은 그와 다르다(하필 그런 의미의 존재력도 김복동 씨에겐 있지만).

‘삶을 사는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기 삶을 사는 힘’, 어디서 주워들은 철학자가 말한, ‘초인의 힘’. 김복동 씨의 존재력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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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력 뿜뿜이었던 김복동 씨와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김복동 씨들에게 말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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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재밌는 영화다. 많이들 봤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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