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냉수먹고 정신차리기 #4
연애할 때, 독특한 경험 중에 하나가 내 안에서 아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유치해진다. 사랑, 이쁨은 어릴 때 많이 받았다. 조건도 없고 일방적으로 받았고 양도 많았다. 심지어 애정을 맘대로 요구하고 생떼도 부리고 애교도 투정도 맘껏 부렸다. 나이가 들면 점차 그 양은 줄어들고 서서히 알게 된다. 예전만큼 직접적으로 애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마구 요구할 수 도 없음을.
그러다가 연애를 시작하면 어릴 때 일방적으로 받던 풍부한 애정을 상대로부터 받게 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아이들이 튀어나오는데, 혀가 짧아지는 사람도 있고 애교가 많아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릴 때도 애교가 많진 않았다. 천성도 있을 테고 삼 남매의 둘째라 그런가, 애정을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했기에 좀 더 전투적이었다. 난 ‘투정’이 나오곤 했다.
사실 연애할 때 나오는 내면 아이들은 연애의 경험이 많을수록 그 출연 횟수가 줄어들곤 하는데, 난 연애경험이 너무 부족했고 이전 연애와 텀이 많이 길었던 탓에 내 안에 아이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정신없이 튀어나왔다. 연애 초반에는 개념 있는 아가씨인 척 하느라 응석 부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쉽지 않았다.
예전 대학 다닐 때 만났던 친구는 비 오는 날 과격하게 생난리를 치는 내 모습조차도 조용히 받아주곤 했었다. 투정을 넘어 생땡깡이었는데 뭐가 이뻤을까. 그 친구도 첫사랑이라 내가 왜 이런 되지도 않는 지랄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고맙게도 모두 받아주었다. 어려서 그랬나. 여하튼 그 고마움도 모르고 그땐 내가 이별을 통보하였다. 그 당시는 휘둘리는 감정에서 벗어나느라 몰랐지만 몇 년간 후회하였다. 다시 만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사랑이 쉽지 않았다.
이번 친구는 30% 투정도 발휘되지 않았을 때, 눈빛이 떨렸고 날 감당하지 못하였다. 사람마다 다 다를진대 상대의 컨디션을 알지 못했다. 내 투정의 정도나 모양도 달랐을 것이다. 그동안 연애를 안 하면서 투정의 모양도 투박하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상대 또한 감수성이 여려서인지 내 투정을 모두 자기 탓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 투정이 그에겐 폭력이었다.
연애하기 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정서적으로 불안정하였는지 몰랐다. 적당한 그리고 학습된 사회성으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고 별일 없이 하루하루 보내던 중이어서, 문제가 일어날 일이 없었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진 않고 있다가 감정의 폭이 커지는 연애를 하면서 그 불안한 정서가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안에 아이가 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인 된 내 커다란 껍데기를 쓰고 어렸을 때처럼 야만적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뭔가 정서가 불안할수록 그들은 컨트롤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