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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영 Sep 29. 2020

01. 태섭이 삼촌 장가가는 날

고마운 삼촌, 태섭이 삼촌 장가간데요.

웃천막이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마을 끄트머리에 사는 태섭이 삼촌이 장가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태섭이 삼촌은 내 친구 영철이의 막내 삼촌인데, 삼촌은 동네에서 노총각으로 소문 나 있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도 장가를 가지 않아서 사람들은 애를 태웠다. 

태섭이 삼촌은 마음씨가 참 고왔다. 늘 웃기만 하고, 동네일이란 일은 다 도와주었다. 동네 공중변소의 똥 퍼는 일은 물론이고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비를 맞으면서 동네 사람들 밭을 찾아서 일일이 물길을 다 터 주었다. 

태섭이 삼촌은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 빨갛게 익은 버찌나 붉게 익은 산딸기를 따주었고, 겨울에는 널빤지를 자르고 굵은 철사를 잘라서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만들어 주었다. 겨울에는 밭두렁에 모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으며 냇가에서 바위를 뒤집고 개구리를 잡아 구워 주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태섭이 삼촌이 장가간다고 하자 마치 제 일 인양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렸다. 청첩장이 없는 때라 아이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태섭이 삼촌 장가간데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가만히 있어도 간밤에 누구 아버지가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는지, 누구 집이 밤에 대판 크게 싸웠는지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동네 이야기까지 다 아는 터라 태섭이 삼촌이 장가간다는 말은 삽시간에 퍼졌다.

아침에 학교에 간 아이들은 어서 빨리 학교 수업이 끝마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에게 동네잔치는 명절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도 태섭이 삼촌이 장가가는 것이 아닌가. 기분 좋은 것은 물론이고 먹는 것이 궁하던 때라 잔치 음식에도 관심이 쏠렸다. 

학교에서 오전반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서둘러서 산으로 올라갔다. 아침도 거르고 점심을 먹지 않은 오전반 아이들은 조금 있으면 배부르게 먹을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잘도 산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집에 책가방을 던져 놓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잔치 집으로 뛰었다. 아이들은 모두 약속이 된 것처럼 골목에서 만나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놀 거리는 물론이고 구경거리 먹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다. 그렇게 뛰어가는 형들 뒤를 따라 동생들도 종종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잔치 집에는 이미 많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마당에는 햇살을 가리느라고 흰 광목으로 차양이 처져 있었다. 언제 오셨는지 술을 좋아하는 형식이네 할아버지는 너른 평상에 앉아서 다른 할아버지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나누면서 한껏 흥에 취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 방 저 방을 오가면서 분주했다. 신부가 있는 방쯤으로 보이는 방에서는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박수를 치면서 웃고 깔깔 거리는 소리가 방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부엌 앞마당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모여 잔치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연탄 화덕 위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 전도 지지고, 동글하고 넓적하게 생긴 노란 고구마 지짐도 굽고, 마당에는 기름 냄새와 전을 굽는 냄새와 연기가 가득했다. 동네 아이들이 부침개를 굽는 연탄 화덕 주위로 모여들었다. 마당에는 판식이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부침개를 굽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침개와 판식이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말은 안 해도 먹고 싶은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러나 판식이 어머니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모르는 척하시면서 부침개만 굽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판식이 어머니가 야속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눈이 부침개를 담아 놓은 대나무 소쿠리에 쏠렸다. 판석이 어머니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훔쳐 먹을까 봐 부침개를 구우면서도 부침개를 담아 놓은 소쿠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옜다, 가져가서 먹어라.”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모른 체할 수 없었던지 판식이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부침개 한 장을 건넸다. 옆에서 아이들과 같이 부침개 굽는 것을 지켜보던 판식이가 얼른 그것을 손에 받아 들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와!”하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부침개를 받아 든 판식이가 부침개를 들고 마당 한쪽 구석으로 뛰었다. 아이들이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판식이가 부침개를 높이 들자 아이들의 손이 부침개로 몰렸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 다투어 손을 내밀었다. 판식이가 아이들의 손에 부침개를 떼어서 나누어 주었다. 키가 작은 상민이도 동네 동생들도 모두 부침개 조금씩을 입에 넣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부침개 한 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들의 입과 손에는 기름기로 반들했다. 

음식 냄새를 맡은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대문 바깥 조금 떨어진 곳에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거지들이 서너 명 우두커니 서서 대문 안 이쪽을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이면 집 집마다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하는 거지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이며 머리와 얼굴은 벌써 몇 달째 씻지 않았는지 꽤재째 했다. 가슴에는 시커먼 깡통을 안고 그렇게 서성거렸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누가 눈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바깥에 있는 거지에게로 향했다. 

“와! 거지다.”

눈치 없는 동호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마당에서 부침개를 굽고 있던 판식이 어머니랑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있던 형식이 할아버지랑, 마당에 있던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쏠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거지들은 더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문 안의 사람들과 대문 밖에 있는 거지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한 형식이 할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고무신을 바로 신느라 허리를 굽혀 몇 번을 비틀거리시다가 겨우 고무신을 바로 신으신 할아버지가 대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은 형식이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실지 아무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거지들에게 다가가자 거지들은 두려운 눈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할아버지의 손이 거지의 손을 잡는 모습이 보였다. 손이 잡힌 거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그를 집 안으로 끄셨다. 

“어여들 들어와!”

할아버지의 말에 거지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면서 할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판식이 엄마, 얘들 뭐 먹을 거 있어요?, 있으면 조금만 주면 좋겠는데.”

그러자 할아버지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판식이 어머니는 접시에 전이랑 부침개들을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손 크다고 소문난 판식이 어머니였다. 접시에 부침개랑, 고구마 전이랑  수북이 담았다. 

“이리로 와서 앉아 먹어.”

평상 위에 접시를 놓고 돌아가 판식이 어머니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전을 지지기 시작했다.

“어여들 와, 아, 어서 오라니깐?”

할아버지의 말에 거지들이 하나둘 평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부침개랑 전을 떼어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할아버지가 빙긋이 웃었다. 술 때문에 빨개진 코가 더 빨개지셨다. 언제 나와 있었는지 대청마루에 태섭이 삼촌이 서 있었다. 한쪽 기둥에 손을 대고 기대어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태섭이 삼촌이 봤더라도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태섭이 삼촌은 지난겨울에 밭두렁에서 고무마를 구워 먹을 때 일부러 거지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옆으로 피했지만 태섭이 삼촌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까맣게 탄 고구마 껍질을 벗겨 그들에게 건네주며 같이 맛있게 먹었다.    

  

거지들은 시장 입구 약국 옆에 있는 다리 아래에 살고 있었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날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날에는 늘 다리 아래에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가 본 적은 없지만 분명 냄새가 많이 날 것만 같았다. 목욕을 하지 않아서 이가 득실거릴 것 같았다. 얼굴과 손이 모두 새까맸다. 동냥을 하러 다니는 양철 깡통도 시커맸다.  

아침이면 거지들은 집집마다 돌면서 동냥을 하러 다녔다. 먹을 것이 귀한 때였지만 사람들은 동냥하러 온 거지들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비록 보리밥이지만은 금방 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깡통에 가득 담아 주었다. 반찬이 있는 집에서는 반찬도 같이 담아 주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오곡으로 지은 밥을 가득 담아 주었다. 여러 집을 돌면 여러 색깔의 밥이 깡통에 담겼다. 깡통 속에는 흰쌀밥도 있었고, 팥이며, 수수며, 보리밥까지 알록달록하게 담겨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지붕 처마 밑에서 깡통 안으로 비가 뚝뚝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 가는 길에 내 또래 거지 아이가 저만치 앞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아이를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엄마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지나가다가 슬쩍 얼굴을 쳐다봤지만 아무 표정이 없었다. 

산동네 아이들은 겨울이면 그래도 비록 진흙을 이겨 담을 쌓고 지은 집이지만 연탄이나 장작을 때서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비도 막아주고, 바람도 막아 주는 집이 있었다. 김치와 된장이지만 따뜻한 밥도 먹을 수도 있었다. 국수나 밀가루 수제비를 먹기도 했지만 얻어먹지는 않았다. 예쁜 만화가 그려진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도 다녔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교실 바닥이 진흙탕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었다.      

태섭이 삼촌은 이제 시내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웃천막 아이들과도 헤어지겠지. 산으로 들로도 다닐 수도 없고, 산 아래 시냇물을 막아서 만든 수영장에서 수영도 같이 못하고, 겨울이면 썰매도 같이 타지 못하고, 아무 재미도 없을 것 같았다. 

사모관대를 쓰고 태섭이 삼촌이 마당으로 나왔다. 아이들을 보고 씨익 웃는데 조금은 긴장한 듯 같았다.

“신부, 추울!”하는 소리에 신부가 바깥마당으로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신랑 삼배.” 하는 소리에 태식이 삼촌이 신부를 보고 엎드려 절을 했다.

신부 집이 가난해서 태식이 삼촌 집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 옆에 앉은 여자 애가 신부가 꼭 태섭이 삼촌을 빼앗아 가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촌은 그 후에도 자주 산동네를 찾아왔다. 태섭이 삼촌이 산동네를 찾을 때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 옆에는 태섭이 삼촌과 결혼한 신부도 같이 있었다. 태섭이 삼촌은 산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태섭이 삼촌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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