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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영 Apr 25. 2022

11화. 정보원

차 부장은 그들을 다시 추격할까?

차 부장은 강 반장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막연히 추측만 가지고는 일하지 않는 강 반장 스타일로 봐서 무언가 일이 있음을 느꼈다.

“무슨 일입니까?”

“…….”

‘강 반장이 이렇게 뜸 들이기는 처음인데…….’

그때 강 반장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 오피러스건 말입니다.”

“오피러스건요? 그건 이미 조사부로 넘어갔고 끝난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요……?”

“조사부로 모두 이첩하고 나서 안테나에 잡혀서 말입니다.”

“안테나요?”

“예,” 

“누군데요……?”

안테나는 정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내용은 확실합니다.”

차 부장은 숨을 쉬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끝낼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이었다.

“주범인 오태봉 회장과 홍대길 사장이 출국 금지되자 부산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말입니다.”

“밀항 말입니까.”

“예.”

“허~ 참…….”

밀항이라니?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밀항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허탈했다.

조사부에서 수사하는 것을 봐서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조사부에서는 시간을 끌면서 수사가 지지부진했고, 그러는 사이에 주범들은 도망간 것이다.

그것도 이웃나라 니혼(日本)으로 말이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사실입니까?”

“안테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거의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확실합니까?”

차 부장이 재차 묻자 강 반장은 대답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속에서 불이 났다.

다 잡은 물고기가 도망간 것이다.

어부가 그물을 바꾼 것이다. 구멍이 촘촘한 그물이 아니라 구멍이 쑹쑹 뚫린 그물로 말이다.

“조사부는요?”

“이야기한다고 그 사람들이 듣겠습니까? 들은 채도 안 할 겁니다.”

맞는 말이다. 강 반장 말대로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수사 내용이 조사부로 이관되자 서둘러 끝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덮으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검사장과 차 부장이 수사권 이관을 놓고 다툰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정권은 다른 정권과는 달랐다.

각종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되고 묻혔다.

정치권의 입김을 타는 검사들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변호하기 바빴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모른체 할까요?”

차 부장은 고심이 깊어졌다.

생각 같아서는 잡으러 가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그럴 권한도 없고 힘도 없고 말이다.

강 반장 말대로 그냥 모른 척 할까?

아냐, 그건 아니지. 그럴 수는 없지.

그럼……? 

그렇게 생각했지만 딱히 답도 없다.

그때였다.

“영감님 계십니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 기자?’

“어쩐 일로……?”

“하하, 영감님께 인사 드린지 하도 오래된 것 같아서 들렀습니다.”

그러면서 눈을 찡긋했다.

“아, 그러지 말아요. 두드러기 나게.”

“허허, 우리가 두드러기가 날 그런 사인가요?”

“안 그러면?”

그러자 엄 기자는 차 부장의 옷깃을 슬쩍 끌었다. 

차 부장이 인상을 쓰자 엄 기자는 웃음을 보였다.

“아직 근무시간이란 말입니다.”

“안다구요. 안다고.”

엄 기자는 차 부장이 그러거니 말거니 상관없다는 듯이 그를 문 쪽으로 밀었다.     

단골로 가는 스시집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주인은 두 사람이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면서 구석에 있는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대낮부터 무슨 술을……?”

“아니, 우리가 언제 술 먹는 시간 정해놓고 먹었습니까? 먹고 싶으면 먹는 거지. 안 그래요?”

“참, 누가 보면 어쩔려구.”

“나야 상관없지만, 영감님이 문제죠.”

엄 기자는 두 손을 펴며 자기는 아무 문제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러깁니까?”

“아, 아, 고정하시고, 한잔 쭉 드세요. 기분 푸시고.”

낮이지만 술은 술이었다.

몇 잔을 연거푸 들이키자 술기운이 느껴졌다.

“별일 없죠?”

“그건 제가 물을 말입니다.” 

엄 기자는 자기 잔에 술을 따르며 차 부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뭔 일 있는 것은 아니죠?”

“엄 기자님, 뭐 알고 오신 것은 아니죠?”

“뭘 알고 오다니요……? 있긴 있군요?”

“있긴 뭐가 있어요……?”

차 부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받자 엄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쉬……!”

“뭐가요?”

차 부장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엄 기자 정보원도 아니구,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닌가?

대(大)기자 앞에서 숨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가 검사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르지만…….

“자, 딱 깨보세요.”

“뭘요?”

“아니~ 뭐가 있다면서요?”

“뭐가요?”

‘어쭈, 이제 검사를 취조하네?’

차 부장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닫이문은 닫혀있고 바깥은 조용했다.

차 부장은 엄 기자를 쳐다보았다.

엄 기자는 그런 차부장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말입니다…….”

차 부장은 입을 열어서 조금 전 강 반장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 부장은 엄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데스크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엄 기자와의 오랜 경험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데요?”

“아직…… 생각 중입니다.”

“엄 기자님은 어떻게……?”

“글쎄요?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증거가 없으니…….”

엄 기자는 그러면서 목을 젖혀 술을 삼켰다.

“제 생각에는 조금 더 시간을 벌어서…….”

“시간을 벌어서요?”

“익으면 따는 거죠. 설익은 것 땄다가는 무슨 소리 들을지 모르죠.”

“그걸 누가 따느냐는 것입니다?”

엄 기자는 그 말에 대답 대신 턱으로 차 부장을 가리켰다.

“저요? 저 말입니까?”

“그럼?”

“전, 안 합니다, 제가 그걸 왜 해요?”

“그럼 저한테 왜 묻습니까?”

“그건 그냥…….”

“아니죠. 이런 정보가 있더라. 그러니 내가 해야겠다. 이런 말 아니에요?”

“그건 아니죠.”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영감님 얼굴 보니까 답이 딱 나와 있는데.”

차 부장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런 차 부장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엄 기자는 흐흐 하며 웃었다.

“저도 정보 하나 드릴까요?”

“정보요? 엄 기자님에게 무슨 정보가 있어요?”

“왜요? 싫으세요?”

정보라니? 지금 엄 기자에게 들려준 이만한 정보 말고 또 어떤 정보가 있다는 말인가?

이제는 비밀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들려주는 정보 교환장이 되고 말았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 그렇지만 정보도 정보 나름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정보라는 게 무슨 동네 뉴스도 아니고, 우린 그런 거 취급 안 한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동네 뉴스는 싫다. 그런 거는 개나 줘라. 이 말입니까?”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어쨌든 한번 들어보세요.”

차 부장은 엄 기자의 말에 자리를 바로 고쳐 앉았다.

“며칠 전에 제 밑에 있는 수습이 청와대 노 수석을 봤다는 것 아닙니까?”

“노 수석 말입니까? 청와대요?”

“예.”

“어디서요?”

“세종 본사 앞에서 말입니다.”

“그래요……? 아니, 그거야 뭐 일 때문에 들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다행이게요, 근데 이건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뭐가 다른데요?”

차 부장의 눈빛이 달라져다.

“요즘, 시중에 노 수석이 그룹들을 몰래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단 말입니다.”

“아니, 소문이 날 정도면 별로 좋은 것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청와대 사람이 그룹을 찾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죠.”

사람들 생각에는 ‘정경유착’이라는게 뿌리 박혀 있어 별로 좋게 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움직이는데, 대낮에 그룹을 찾다니, 간 큰 도둑처럼 보였다.

“노 수석이 왜 그룹을 찾아다니겠습니까?” 

“돈……?”

“눈치가 빠르네요. 그렇지요. 청와대에서 왜 그룹을 찾아다니겠습니까?”

“그래도,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짓 아닙니까?”

“걔들이 어디 뭐 그런 것 따집니까?”

“그러다 언론에 나면 어쩔려구요?”

“미리 다 손을 써놨겠죠. 걔들이 뭐 준비 없이 하지는 않잖아요?”

“그럼, 뭐 한 몫 보겠다는 겁니까?”

엄 기자는 대답 대신 술을 들이켰다.

그때 바깥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큰 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비밀스런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엄 기자님,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예…?”

“그럼, 세종도 마찬가집니까?”

“어떤 뜻으로요?”

“뭐, 청와대에 돈 주고 하는 것 말입니다.”

“글쎄요, 세종그룹 김 회장이 고지식하다고 소문났는데 그래도 청와대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 한 실장이라는 사람 아세요?”

“한 실장요? 갑자기 한 실장은 왜요?”

“그냥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왜요? 그 사람하고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엄 기자는 그런 차 부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 부장이 한 실장에 대해 묻는 게 이상한듯했다.

“뭔데요? 차 부장은 왜 물어보는데요?”

“…….” 

“사람들이 한 실장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회장 다음으로 실세이기는 하지만 워낙 조용히 일하는 스타일이라서 말입니다.”

역시 엄 기자는 대(大)기자, 마당발 기자다웠다.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와 경제부 기자를 한 탓으로 정, 경제계의 소식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어지간한 기업 회장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과 회사 내 중요 인물들의 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검찰이나 경찰에서 아는 정보를 먼저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간혹 초임 검사가 중요 내용을 그에게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차 부장 역시도 처음에 엄 기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럼 내일은 이 몸이 직접 세종그룹에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엄 기자는 그러면서 곁눈으로 차 부장을 살폈다.

“그럼, 오늘 이 술값은 누가 내나……?”

“그냥, 저 보고 내라 하세요.”

“하하, 이거 번번이 신세를 져서 미안해서 어떡하나?”

엄 기자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차 부장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차 부장은 그런 엄 기자를 밀치면서 옷을 집어 들었다.

“찌라시 말고 정보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한 실장 그 사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뭔가 내용이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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