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이 항로를 이탈했다
에릭이 항로 프로그램을 초기화하기 위해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자 윙- 소리와 함께 계기판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가이아가 다시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거인이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에릭은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하면서도 신중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확인이 끝났는지 에릭이 제라드를 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제라드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때였다. 휴스턴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휴스턴이다! 톰이 항로를 이탈했다.”
“무슨 일이야? 톰이 항로를 벗어나다니?”
“판타시아를 떠났는데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휴스턴! 무슨 말인가?”
“톰이 항로 프로그램을 다시 세팅한 후에 갑자기 사라졌다.”
그럴 리가? 톰이 위치 추적이 안 되고 사라지다니? 실종이란 말인가?
“정상대로라면 혹시 지금 위치에서 보일지도 모른다. 확인 바란다.”
“라저.”
“에릭! 레이더 한번 살펴줘.”
“벌써 보고 있는데, 보이지 않아요.”
에릭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항로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톰(무인우주선)이 실종되다니?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다니? 이러다가 우리까지……?
대원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표정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레이더에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도 아니고.
대원들은 모두 흩어져서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바깥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훑어봐도 캄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찾는다 말인가? 뭐가 보여야 말이지.
니콜라이는 아예 얼굴을 유리창에 대고 있었다.
그때 니콜라이가 바깥을 보면서 소리쳤다.
“찾았다! 저기, 저기 있어.”
니콜라이는 뒤로 돌아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니콜라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자 저 멀리 어둠 속에 톰이 깜빡깜빡 등을 밝히면서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 어디로 가는 거야. 지구 방향이 아니잖아?”
톰은 한눈에 봐도 항로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휴스턴! 톰을 찾았다. 그런데 항로를 벗어난 것 같다.”
잡음과 함께 무전 소리가 났다.
“지금 보이는가?”
“보고 있다.”
“위치를 확인해 주기 바란다.”
“섹스턴트, 420.112 N. 236.124 E.”
“라저.”
그러는 사이 톰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휴스턴! 톰이 멀어지고 있다. 휴스턴! 휴스턴!”
응답이 없었다.
“이런.”
에릭이 주먹으로 계기판을 쳤다.
깜빡이던 불빛이 점점 멀어져 갔다.
“휴스턴!”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에릭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톰이 어둠 속에서 저 멀리 아주 작게, 등을 깜빡이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모두 깊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도 말을 못 했다.
톰이 사라지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휴스턴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휴스턴이다. 톰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사라졌다.”
에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톰이 사라진 곳에는 깊은 어둠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저녁 지구에서는 <무인 우주선 ‘톰’, 우주에서 ‘실종’>이라는 기사가 매스컴을 메웠다.
대원들은 모두 망연자실, 충격에 빠졌다.
그것은 휴스턴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깊은 한숨이 관제센터를 가득 메웠다.
휴스턴에서 아무리 조종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더라는 말은 뒤에 들은 이야기였다.
“에릭!”
대원들을 깨운 것은 제라드였다.
항로 프로그램을 리셋 중에 일어난 일이라 계기판에는 커서가 계속 깜빡거리고 있었다.
에릭이 화면을 터치하자 프로그램이 다시 빠르게 설치되기 시작했다.
설치가 끝나자 자동으로 부팅되면서 속도계 숫자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에릭이 손가락으로 조종실 정면을 가리켰다.
“판타시아가 보입니다.”
에릭은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에릭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자 저 멀리 커다란 흰색의 둥근 구조물이 보였다.
“판타시아다!”
대원들은 판타시아라는 말에 모두 조종석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그 광경을 보고 놀라했다.
“니후야 시베!(이럴 수가)” 니콜라이가 크게 소리쳤다.
조금 전 우울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봉 디유!” 하면서 삐에르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도 판타시아 때문에 모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판타시아(ISS)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판타시아는 영국 템즈 강변에 있는 대관람차 ‘런던 아이(London Eye)’처럼 둥근 모양으로 중앙에는 회전축이 있었고 크기는 축구장 20개를 연결해 놓은 것처럼 엄청난 크기였다.
회전 바퀴에는 크고 작은 창들이 나 있었고, 모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 거기 사람들도 가이아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가이아가 조금씩 다가가자 판타시아의 웅장함이 더 크게 드러나 보였다.
“언젠가는 ‘테라포밍(Terraforming)’ 기술로 화성에서 사는 날이 오겠지.”
제라드가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행성에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만드는 ‘테라포밍’ 기술이 발달되면서 기후와 유성으로부터의 보호와 물, 음식, 공기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였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랑데부 궤도에 진입합니다. 자동 조정입니다.”
자동 조정에 불이 들어왔다.
가이아는 천천히 판타시아와 궤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기울기 양호합니다. 현 상태로 고정합니다.”
에릭이 계기판을 보면서 말했다.
“판타시아 궤도로 진입 완료.”
“주 엔진 정지. 고도조절 엔진 가동.”
주 엔진이 정지되고 고도조절 엔진이 가동되자 우주선이 좌우로 움직였다.
“고도 자동 조절 시스템 작동.”
“이대로 접근합니다.”
“접근 확인.”
“상태 양호.”
“현재 속도 시속 2만 8천 킬로미터.”
“도킹 포드 A24번으로 접근합니다.”
“속도 2만 5천. 계속 감속합니다.”
가이아는 상대속도가 제로가 될 때까지 속도를 줄이면서 판타시아로 접근해 갔다.
궤도를 일치시키는 랑데부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 때에 따라서는 몇 시간씩 걸리는 때도 있었다.
“속도 2만.”
멀리 ‘A24’라고 쓰인 도킹 포트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제라드가 에릭에게 말했다.
“거리 900… 800… 700… 600….”
이제 도킹 포트는 손에 잡힐 듯이 눈앞에 가까이 와 있었다.
도킹 포트 해치가 반짝거렸다.
“500… 400… 300… 200… 100… 80… 70… 60… 50… 40… 30… 20… 10….”
잠시 후 무언가에 부딪히는 느낌이 전해왔다.
“도킹 완료! 터치 다운!”
에릭이 조종간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뗐다. 그리고는 안전 스위치를 켰다.
도킹이 완료된 우주선은 우주정거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주정거장과 기압을 맞춘 다음 해치를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심해에 들어간 다이버들이 잠수병을 방지하기 위해 천천히 물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