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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금숙 작가 Sep 25. 2021

나에게는 아지트가 필요했다

2017년 9월30일부터 10월9일은 유래 없는 10일 간의 긴 연휴였다. 추석과 개천절 대체 휴일이 겹쳐 말 그대로 황금 휴일이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여행 갈지 기쁜 마음이었다. 휴가보다 더 긴 휴일을 보낼 생각에 마음은 풍선을 달고 다들 들떠 있었다. 9월 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연휴인데 어디라도 가야하지 않을까?”나는 심플하게 “응 이미 내가 다 정해 놓았어, 당신은 먹을 것만 챙기면 돼.” “어디 가는데”“바다가 보이는 예쁜 집이야” ‘그긴 어디야?”“우리 집이야”“뭐라고?” “남해에 있는 우리 집, 내가 시골 집 사서 리모델링 했어”“이번 연휴는 남해에서 보내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무심한 듯 말을 했으나 가슴은 콩닥콩닥 며칠 전부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 지 고심하고 있었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계속 미루며 노심초사 하고 있었다. 불편한 침묵이 흐른 뒤 남편이 “왜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어?” “미리 말했으면 반대 했을 거잖아.”남편은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앞만 보며 운전을 하였다. 내 가슴은 조마조마 언제 폭탄이 터질까 하는 불안감과 말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함께 들었다. 내 인생 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시골집 리모델링은 가장 큰 대형 사건이다. 어떤 배우자도 집을 사고 수리하는데 의논 한마디 없이 끝나고 난 뒤에 통보 식으로 듣는 경우 기분이 어떨지 상상이 될 것이다. 황당하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배신감이 크리라. 이렇게 우리 가족의 남해 입주기는 시작 되었다.   

  

나는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해에 낡은 집을 사서 살겠다고 마음먹었을까. 그동안 자기계발 하며 커리어를 쌓고 부지런히 살았다. 이룬 것도 많다. 오죽하면 다음 책의 제목을 날마다 뜀박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삐 다녔다. 어느 날 숨이 턱에 닿도록 강의시간을 맞추기 위해 헐레벌떡 뛰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될수록 가족에게도 내게도 이건 아니다. 이러다 큰 일 나겠다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그런 마음이 화마처럼 커져 활활 타고 남은 재처럼 마음은 황망했다. 무언가 시작하면 온 힘을 다해 하루를 보냈다. 이루고 나면 달콤한 성취감을 맛본다. 몇 시간에서 고작 몇 날의 행복이었고 뿌듯함이었다. 다시금 내게는 결핍이 주어진다. 난 그걸 채우기 위해 새로운 꺼리를 찾고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SNS로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행복을 꿈꾼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행복 하라고 하지만 너나할 것 없이 마음이 허하다. 행복한가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 ‘네 정말 행복 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적다. 때로는 행복하세요라는 마음을 전하는 이도 받는 이도 행복을 원하는 마음은 막연하고 건조하다. 2019년 6월29일자 동아일보에서는 2018년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고작 56점이었다. 점점 행복감이 하락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길, 내가 잘 가고 있다고 믿는 길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살면서 불안감, 막연한 두려움의 마음이 커지기 시작하며 불면의 밤도 늘어났다. 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좋았다 나빴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학원의 매출과 함께 사람에게 받는 마음고생은 나를 점점 개미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온갖 상념에 이러 저리 몸을 뒤척이며 날 밤을 새는 날이 잦아졌다. 삶의 질은 떨어지고 몸은 내게 그만 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폭주하는 기관차는 결국 충돌해야 멈춘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흙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도 좋고 도시도 좋고 편리한 삶도 중요하다. 자연을 그리기 시작하며 조용한 시골에 내 땅 한편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이 될 것 같았다. 내 마음과 달리 현실은 계속 나를 달리게 하였다. 좀 쉬자. 쉬어. 나의 마음과 정신은 끊임없이 쉼을 요구하며 내게 애원하였지만 나는 못들은 척 했다. 방법도 없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무심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의 마음과 몸은 시위를 하기 시작 하였다. 이제 그만 하라고 마음은 피폐해 지고 몸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였다.     


고백하건데 나는 책 중독자임이 분명하다. 어딜 가든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가방에 책과 노트북은 기본으로 가지고 다닌다. 책은 내게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 지식을 주지만 때로는 아무리 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껌 딱지처럼 부담스러운 존재다. 건강 염려증 환자가 늘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고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처럼 나는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책이 때로는 나의 자유와 사유를 방해한다. 날마다 읽어야 사는 여자라고나 할까. 요즘은 읽고 쓰는 사람이다. 서른 후반까지는 나이를 물으면 당당하게 대답했는데 중년이 된 후 나이를 물어 보는 것이 반갑지 않다. 어린 시절 몇 년 동안 39살이라고 했던 이모가 이상했는데 딱 그만큼의 나이가 된 후부터는 이해가 된다. 100세 인생에 평균 수명을 산다고 해도 아직 많은 삶이 남았지만 자신 있는 나이는 아니다. 40대에 들어오며 생기는 노화현상 중 가장 큰 불편함은 노안이었다. 내 인생에 안경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시력과 상관없이 노안은 내게 안경을 반강제적으로 쓸 수밖에 없게 하였다. 잘 보이던 글씨가 어느 날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의 불편함과 속상함은 말 할 수 없이 컸다. 보이지 않던 글자가 시골의 좋은 공기 속에서는 잘 보이던 일도 내게는 작은 충격이었다. 환경이 참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 씩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 반갑지 않은 노화현상과 한번 씩 찾아오는 무기력과 불편함 마음들, 늘 활짝 웃고 있지만 마음을 울고 있던 날들이 많아지면서 어딘가 숨을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이렇게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며 자연을 원하고 있었다. 나의 아지트가 절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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