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선택, 정말 어쩔 수 없었나.

자신의 과오를 포장하려는 합리화는 아니었을까요?

by 소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먼저, 선택이란 여러 것 중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선택지만 있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무엇일까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있어 가장 예시로 좋은 것이 '트롤리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트롤리 딜레마는 고장 난 브레이크를 가진 트롤리 기차가 달리는 상황에서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기꺼이 수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윤리적 문제입니다.


도식화한 트롤리 딜레마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달리고 있는 레일 위에 다수의 인질이 누워있을 때 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레일 변환기를 사용해 트롤리 방향을 바꾸는 방법뿐입니다. 하지만 다른 레일 위에는 1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다면 트롤리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가 주된 논쟁 사항입니다.


저는 운전수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둘 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레일 변환기를 손에 쥔 운전수는 어떠한 선택을 하여도 자신이 얻는 효용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자신이 효용을 얻기 위한 혹은 잃고 싶지 않아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는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효용을 포기한다면 분명 자신의 효용이 아닌 지킬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이상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합리화하는 것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는 '어쩔 수 없는 친일행위'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위는 종종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해당 부분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친일을 함으로써 얻는 효용과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친일행위를 하지 않아도 됐었습니다. 다만, 자신이 얻는 효용이 없을 뿐.



진정으로 ‘어쩔 수 없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저항하거나, 침묵하거나, 우리나라를 지키려다 희생당한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친일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였다”라는 서술은 현실의 압박을 이해하려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과오를 합리화하고 책임을 흐리려는 언어적 장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며 저 또한 스스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진정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진실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제 자신의 과오 포장을 위한 합리화였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