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김미숙의 가정음악

Suzanne valadon

by 소년의길

전 아침에 출근하면서 언제나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듣습니다. 정말 애정 하는 방송이에요. 때때로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출근길에 김미숙 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줄기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방송의 모든 시간이 좋지만, 특히 재밌게 듣는 부분은,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와 심리를 돌아보는 ‘ 마음을 읽다 ‘라는 낭송 코너예요.


낭송 코너에 수잔 발라동 Susanne Valadon 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것은 작년 어느 월요일입니다. 그 주내네 출근하면서 , 카펜터스의 노래에 나오는 가사처럼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발라동의 인생에 빠져 지냈습니다.


해가 바뀌어 2월,


겨울 휴가가 끝나고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하여 일상에 복귀해야 하는 파리의 마지막 날, 공항 가기 전에, 언제나 습관적으로 들르는 오르셰 근처의 빈티지 포스터 가게에 들어서자, 십 년이상 안면을 튼 주인이 너한테 줄 게 있다고, 저를 반겼습니다.


지하창고에서 파리 코뮌 시대에나 볼듯한 커다란 주철판을 끙끙대면서 들고 올라와펼쳐보일 때까지도 , 저는 한국 도착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골치 아픈 일상에 대한 걱정에 잠겨 , 심드렁하게 있었어요.


하지만, 색 바랜 미농지가 벗겨지고 장미 문양이 떠오르고 고색창연한 알파벳이 드러나자 심장이 멎을 뻔했습니다. 1927년 프린트된 수잔 발라동 전시회 포스터였어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폰트의 유려한 아름다움에 홀려 한동안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려고 작년에 가정음악을 그렇게 들었나 보다는 이상한 운명이 느껴져서 멜랑콜리해졌습니다.


흥정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주인이 달라는 대로 남은 유로를 탈탈 털어 준 후,


포장을 하는데, 무려 세로 크기가 133센티나 되는 탓에 화구통에도 당연히 들어가지 않습니다. 파리지엔 특성상 한국처럼 완벽한 포장을 기대할 수는 없고, 대충 종이에 말아 주는 걸 받아서 나왔는데, 공항까지 택시 타고 가는 것부터 해서 뭐하나 편한 게 없었어요.


비행기 짐칸에 실을 수도 없어서 핸드 캐리를 했는데, 문제는 비행기 캐빈 안에도 당연히 안 들어가더라는ㅠ ㅠ. 에어프랑스 탔으면 눈치 오지게 받았을 거예요.


다행히 친절한 대한항공 국적기 승무원님 덕분에 조종석 뒤 빈 공간에 그림이 옮겨져 무사히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림 다칠까 봐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12시간 동안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림의 평을 여러 분들이 해주셨는데, 의외로, 아 이건 올훼스의 창에 나오는 삽화 같아요. 너무 그립네요. 하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 찾아봤는데 유명한 소녀 만화였던 거 같아요.


사실, 수잔 발라동의 생애는 이건 말도 안 돼 하고 부르짖고 싶은?


소녀 만화적인 부분이 무척 많은 것 같습니다.


1865년 발라동은 하녀의 사생아로 태어납니다.

4살 무렵 , 양아버지가 절도죄로 체포되어 프랑스령 기아나로 유형을 떠나죠.


무심한 어머니와 함께 혈혈단신 파리의 밑바닥에서 장례사의 조수, 야채상, 바의 웨이트리스 , 행상, 마구간의 허드렛일 등등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작은 행운이 찾아와 서커스의 단원이 되어 꿈을 펼쳐보려 했지만, 회전 그네에서 낙상하여 몸을 다쳐 그마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극심한 빈곤과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발라동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삶의 낭떠러지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 화가들을 위한 그림 모델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화가 로트렉의 눈에 띄어 그의 모델이 되고 또 연인이 되고 , 로트렉의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을 직접 그리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화가로서 자기의 삶을 연주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겉으로만 보면 너무 순정 만화스러운 이야기지만, 그 이면을 보면, 절망 속에서 무섭게 치열하고 , 야심만만하며 결단력 있게 인생을 개척해 나갔던 한 재능 있는 여성의 모습이 있어요.


로트렉, 드가, 르느와르, 에릭 사티, 드뷔시 등등 발라동에게 구애하고 친교를 유지한 당시 예술계 일류의 남자들의 이름들을 보면 , 발라동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 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그 매력은 르느와르가 그렸던 육감적인 몸매나 드뷔시가 찬사 했던 푸른 에메랄드빛 눈동자에서 오는 게 아니라 발라동이라는 인간의 정신적인 본질에서 오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녀가 그린 여성 이미지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시각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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