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일을 함께 해야 할 때

나이만 먹은 '어른이'가 되지 않기 위해

by 드림트리

협력업체의 팀장 직급을 달고 있는 그녀는, 내게 늘 무언의 감정이 쌓여있는 듯했다.

이건 어린 나이에 입사했던 그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앞으로 업무 하면서 자주 연락해야 할 사람이라고 소개받은 그녀는 나보다 20살 정도 많아 보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배우고 모르는 게 많을 내게 알아듣지 못할 업무이야기들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읊어대며 말한다.

“아직 어렵죠? 이 부분까지는 잘 모르시죠? 하하하하”

기분 나쁜 듯한 웃음을 수화기 너머로 들리게 한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발악은 점점 심해졌다.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간단한 상황들을 최대한 어렵게 꼬아서 말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더 무시할까 봐 최대한 알아들으려고 집중했다. 그럼에도 잘 못 알아듣는걸 눈치챘는지 더 어렵게 말하며, 내게 바로 답변을 요구한다. 1년 이상이 지나고서야 깨달은 바는 그녀는 정말 단순한 상황들을 상당히 어렵게 꼬아서 말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점 때문에 난 고난도 해석 능력을 가져야 했으며, 그녀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그 현상을 더 빨리 파악하는 게 유리했다.


그녀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늘 내게 연락했다. 고단하고 메마른 삶의 고초를 업무와 엮어 내게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녀 : “**씨, 지금 이 상황 왜 이런 거예요?”

나 : “안 그래도 고객사 측에서 이러한 문제로 조금 지연되고 있다고 해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녀 : “**씨 지금 내가 시간이 없어 보여요?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알아요? 어제도 여기 지역 출장 갔다가 오늘은 또 이쪽 지역으로 와 있는데 이거 제대로 안되면.....(쏘아붙이며 계속 말함)

나 : “아.. 네.. 고객사에서 아무튼 해결해줘야 지금 상황이 해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녀 : “**씨!!!!!!!”

(나와 같은 사무직들이 현장에 갈 수 없기에, 본인 소속의 업체에 비용을 지급하며 본인도 월급을 받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어린 나이에 입사했던 난, 그냥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죄송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실수 하나라도 발견하면 수화기 너머로 30분 이상을 미친 듯이 쏴 된다.

나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큰 문제가 될 것도 없는 일이라 이렇게까지 내가 사과해야 할 일인가 싶다가도 다소 번거롭게 불편을 준 나의 실책임이 있기에.. 신입이었던 난 그녀에게 내내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내겐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신입 때 몇 번 했던 실수를 몇 년째 물고 끌고 가는 그녀,

조금만이라도 실수가 발생했다 싶으면 미리 나의 상사에게 연락하며 고자질을 해댄다.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거 **씨 잘못인 거 맞죠?”

한 두 번 그녀의 편을 들어주던 상사들도 매번 연락 와서 내 잘못을 하루 종일 읊어대는 그녀가 귀찮았나 보다. 실제로 문제 될만한 업무 사고도 아니고, 내게 물어봤을 때 더 논리적으로 내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사고처럼 보이게 억지로 만들어낸 그녀의 무논리를 깨달은 상사가 잘 받아주지 않았더니, 또 다른 상사에게 연락하여 뜬금없이 내 실수담(도 아닌)을 처음부터 줄줄이 언급한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과연 할 수 있는 행동일까 싶었다.

부정적인 프레임을 덮어 씌우고, 계속해서 나에 대한 험담을 상사들에게 말하는 어른답지 못한 모습.

‘어른이’ 나이가 들어도 어린이 같은 , 어른답지 못한 모습을 갖춘 사람들도 있구나라고 느꼈다.


그녀 : “**씨 ,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내가 출장 다니는 거 쉬워 보이죠? 차 운전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가서도 바로 현장에 도착하는 줄 알죠? 어떨 때는 주차하는데 30분 넘게 시간 쏟고, 주차는 해 보셨어요? 현장에 직접 가보기는 했어요? 현장 들어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요. 게다가 끝나면 매번 밤 10시 넘어 집에 도착하는데....”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 히스테리는 어떻게 받아줘야 하는 걸까. 힘들다고 푸념하는 전화라면 공감해주며 위로라도 해줄 텐데, 매번 전화로 소리 지르고 쏴대며 자신의 힘든 인생이 마치 내가 만든 것인 마냥 말한다. 친구나 지인이라면 끊어내면 되지만, 그녀는 싫으나 좋으나 내가 함께 일해야 할 협력사 직원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면 인생이 정말 피폐해진다.


갑과 을이 바뀐 관계, 어쩌면 내가 갑이어야 하는데 점점 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당시 상사들이 그녀의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사 1 : 원래 성격이 약간 다혈질이야. 네가 이해해.

상사 2 :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냥 듣고 넘겨.

나쁜 사람이 아닌 것도 알고, 다혈질이라는 것도 알지만 동년배인 본인들에게 하는 장난 섞인 푸념과 내게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건 그들도 분명 알고 있지 않았을까. 지옥 같은 나날이 자주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서야 당시 내 편을 들어주지 못했던걸 언급하며 뒤늦게 내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업무를 정확하게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그녀보다 내가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경력 3-4년 차쯤, 나도 모든 업무가 완벽히 파악되고 있을 시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중과 의도를 명확히 간파했다.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무작정 전화 와서 소리부터 질러대는 그녀에게 말한다.

“일단 용건부터 말해주시겠어요? 정말 바빠서 그래요. 제가 지금 그런 말들을 다 들어드릴 수가 없어요.”

용건과 함께 감정 섞인 말들을 퍼붓자 나는 말한다.

“네, 알겠고요. 전화 끊을게요.”


그녀의 연락을 더 이상 받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감정싸움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 고난도의 무논리에 휘둘리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난 1분 1초를 다툴 만큼 업무로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나는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원하는 요구사항이나 요청사항이 있다면 단체 카톡방에 남길 것, 업무적으로 특이사항이 발생했을 시 모든 이들이 상황을 다 알 수 있도록 단체방에 상황을 글로 남긴 후 연락할 것’

즉, 다짜고짜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부터 하여 감정을 싣고 히스테리 부리는 걸 방지하고 싶었다.


그녀가 연락 오면 나는 말했다.

“지금 회의 중이니 카톡방에 남겨주세요.”

몇 십분 후 또 연락 오면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말했다.

나 : "저한테만 단독으로 전화로 말씀 주시면, 저는 이 상황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또 알려야 하잖아요."

그녀 : "직접 알리면 되죠. 저도 바쁜데 제가 이걸 정리해야 하나요? 전 전화가 편해요."

나 : "제가 이 상황을 정리하여 전달하다 보면 일부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 그 상황을 가장 잘 알고 계신 팀장님께서 정리해서 단체방에 보내주시겠어요? 단체방에 속한 모두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제가 카톡을 못 볼 때 다른 연관자들이 저보다 더 먼저 카톡을 읽고 바로 답변을 드리면 팀장님도 편하시잖아요. 몇몇 일들은 제가 의사결정이 어려운 사안이라 저한테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시면 의미가 없는 부분이 많아요.."


나름의 논리성을 모두 갖추고 말을 하자 그녀도 수긍했다.

이후 그녀와 통화할 일이 매우 줄었다. 단체 카톡방은 내 삶을 상당히 편안하게 해 주었다. 모두가 있는 그 방에서 그녀는 내게 개인적인 연락으로 쏴댔던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또한 고난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니 단시간에 이해도 훨씬 더 잘 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쉽게 잘 설명할 수 있었으면서 왜 그동안 내게 꼬고 꼬아서 설명했을까, 어떤 일이든 쉽고 알맞게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을 왜 감정을 실어 얘기했을까.


최근 그녀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녀의 퇴사 소식을 듣고 놀랐다. 작은 (협력업체) 회사지만 나름의 야망이 있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사장의 신뢰와 총애를 받고 있다던데 무슨 일로 그만두게 되었던 것일까.


그녀가 내게 준 교훈은 이렇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도 어른답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선을 넘어선 행동들이 반복된다면, 불쾌감을 보이며 경고장을 날려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


그녀의 퇴사를 통해 그 많은 신경전과 감정 소모들이 한낱 부질없는 없는 것들로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회사 입사 10년 차, 정말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왔고 마음이 안 맞았던 사람들은 2-3명 정도 있었다. 이왕 일을 할 거면 같은 노동자로써 좋은 감정으로 일해도 되지 않았을까. 회사라는 이름과 업무를 떼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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