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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Mar 01. 2023

내 아이는 왜 감정을 감출까

학교폭력 신고가 어려운 이유

초등학교 1학년 시절,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대각선 자리의 한 친구와 평소보다 크게 다퉜다.

평소 전혀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였으나, 어떤 사유로 싸운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언니한테 다 이를거야"

작은 동네, 작은학교.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녀의 언니는 학교에서 피부도 하얗고 예뻐서 인기가 꽤 있다는 소문이 있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언니와 함께 다니는 친구의 모습을 몇번 봤기에 살짝 두려웠지만 지지않고 답했다.

"일러라. 이 일름보야!"

어느날 혼자 놀고 있는 친구를 놀이터에서 보게되었고, 함께 놀면서 우리는 그렇게 일주일도 안되어 극적으로 화해했다.


이후 학교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와 놀다가, 그녀의 언니가 친구와 함께 내가 노는곳으로 오는걸 보게 되었다.

갑자기 친구와 내게 몇학년인지 물어본 후 이름을 묻는다.

조금 두려운 상태로 내가 이름을 말하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아주 격앙된 상태가 되었다.

"너 때문에 내 동생이 집에서 얼마나 울었는줄 아냐"면서

초등학교 1학년이 듣기에 충격적인 온갖 악담을 퍼부으며 나를 완벽하게 궁지로 몰아세웠다.


친구가 싸웠으나 화해했다고까지는 얘기를 안했나보다.


인생 8년차에 처음 느끼는 공포감, 무력감, 수치심, 절망감 ..

화해했는데 왜 그러냐는 말을 할 수가 없을만큼, 키도 머리 하나가 더 큰 4학년의 그녀는, 5-10분동안 내게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말을 하다가 마지막엔 나를 째려보며 친구와 자리를 떠났다.


망치로 머리를 제대로 엊어맞은걸 넘어 정신상태가 파멸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온전했던 일상을 살아오다가 받은 충격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만큼, 무기력감과 공포감은 집에 가는 내내 지속되었고, 한동안 그 충격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 날, 나는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너무 창피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당하고 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 8살짜리가 말이다.

혹여나 내가 말을해서 부모님이 이 사건을 크게 만들면, 그 잘나간다는 무리의 언니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나의 가족들을 괴롭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이 일을 우리 가족들이 전부 알게되고, (작은 동네인만큼) 주변 친구들도 전부 알게된다면...'

부끄러운 감정도 들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참자...'

나만 입을 다물고, 내가 덮으면 끝이니, 힘들더라도 그냥 참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 성격이었다.

특히나 자존심 상할만한 이야기는 더더욱 꺼내지 않고 혼자 묵혀두는 것,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 가서 함구령을 지키는게 바로 나였다.

자존심, 어린나이의 내겐 목숨처럼 중요한 지조였다.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같이 다니는 무리에서 자기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끌려다닌다는 모습을 먼저 캐치한건 부모님이었다.

"너가 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고 해! 걔가 하자는대로 다 하면, 사람이 만만해진다고.

엄마도 다 경험해봤기때문에 하는 말이야"


이사 온 중학교에서 반학기동안 제대로 된 친구도 없이 겉돌때도,

나홀로 마음앓이만 가득한 채 부모님께 한마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내가 부적응자, 은따라는걸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중학교로 옮겨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아주 힘들어도 그냥 참고 지내는게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일을 직장에서도 겪게 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글을 많이 썼던 것처럼) 직장에서 만난 한 상사는 어린 나이에 입사한 내게 교묘하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죄의식 없이 자행했다.

그 업무와 그 사람 그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일반 사람들은 결코 공감할 수 없었기에, 공감을 받지 못해서 말을 않고 모든걸 포기한채 고통스럽게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중소기업이었다면 미련없이 나왔겠지만, 하필 대기업에 붙게 되어 함부로 나올 수도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한다고, 그러나 이 회사를 나오면 당장의 생계에 큰 영향을 받으니, 무엇보다 다음에 구할 회사는 이보다 더 안좋은 회사일 수 밖에 없으니, 선택권이 없었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지시에도 버티고 참으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학생때는 자존심, 직장인이 되어서는 생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참을 인'자를 가득 지고 삶을 살아온 내가, 고통에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 감히 말해본다.

그 누구도 내게 고통을 준 권리는 없다.


내게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나의 집, 나의 가족까지 알고 있다면 피해자는 상당히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무식하게 손이 먼저나가는 가해자를 만나게 된다면 , 잃을게 별로 없어보이는 가해자를 만나게 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받을 피해를 생각할수록 두려움은 배가 된다.

나만 없어지면 되고, 나만 참으면 되니, 내 선에서 끝내는게 가장 나은 선택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학생의 나이에 자신이 가진 세상의 틀을 깬다는건 방법도 막막하고 생각하기 참 어려운 일이다.

학교 내 신고센터나 사외단체 그리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이걸로 안된다면 연고없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것.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죄책감은 뒷전으로 생각해도 된다. 내가 죽게 생겼다면 말이다.)

인생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단계

인생은 매우 소중한만큼, 긴 인생에서 잠깐의 순간에 그까짓 자존심 버리는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학생때의 자존심은 한낱 흘러가는 감정 중 하나일 뿐이다. 살아가면서 더 자존심 상할 일은 많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겪어보고 현명하게 이겨내는 방법을 찾으며 배워간다.


20대 직장생활을 하며 오랜기간 겪은 가스라이팅에 직장 내 괴롭힘, 지점(부서)이동으로 끔찍했던 공간과 사람들을 탈피했던 건 내 인생의 가장 완벽한 선택이었다.

부당한 일을 시키고 과도한 과업을 유독 내게만 주던 한 명의 직장 상사와 제대로 틀어진 이후, 맞이했던 조직적인 다른 상사들의 괴롭힘.

(지금 부서에서 전혀 문제없이 생활하는걸 보면, 당시 부적응한게 절대 아니었다.)

어느순간부터 그를 쳐다만봐도 분노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이 덜덜 떨리는 반응까지 일어났었다.

그 사람들이 있는 한, 그 공간에 머무르는 한,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준대도 내겐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공간을 벗어남으로써 , 나는 그렇게 나를 지킬 수 있었다. 공간을 탈피하는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멋진 도전이다.


희망적으로 말해주고 싶은건, 세상에는 정말 올바르고 선하고 괜찮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고통을 겪고 있다면,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공간을 탈피할 방법을 찾아보며 내 자신을 우선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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