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사회생활 트라우마, 극복할 수 없는 이유
사람이 공동체를 경험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과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사람에게서 받는 트라우마는 평생 간다.
'원수를 사랑하라'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젓는다.
"저는 원수를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살 ,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서 교내인턴을 지원했다.
단순한 업무밖에 없다는 이유로 당시 최저시급 4,860원보다 적은 4,300원에 책정된 그 업무,
통장 잔고가 0원으로 수렴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돈은 벌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게 일을 시키는 사람은 계약직으로 채용된 학교 졸업생이자 당시 24살의 여자 2명이었다.
그중 1명은 가만히 앉아있는 내게 무엇이 그리 불만이었는지 모르겠다.
4-5평 남짓한 숨 막히는 공간에서 계약직 2명, 인턴 3-4명이 앉아 있었고, 우리 인턴들은 교내 강의실에 부품이 고장 났거나 소모품(교내 인쇄기 A4용지 등)을 시간마다 채우거나 교수님이 비품을 요청했을 때 가져다주는 지원 업무였다. 우리 선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계약직 2명이 직접 나서야 했고, 그들은 내부 업무도 일부 있었으나 월급대비 꿀이라는 말이 있었다.
당시 나보다 3살 많은 그녀는 왕으로 군림했다.
바로 옆에 있는 복사기에서 개인적인 용무로 인쇄한 종이를 가져달라는 그녀,
"지금 인쇄한 종이 갖다 줄래?"
(화장실을 다녀오는 내게) "너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거니?"
초반에는 원래 차가운 성격인 줄 알았던 그녀는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인턴들이 다 앉아있는 상황에서 유독 나를 콕 집어 일을 시키고 창피를 준다.
"야! 그거 줘"
"(추궁하듯이) 너 내가 하라는 거 제대로 한 거 맞아?"
다른 인턴들에게는 "~아"로 부르면서, 나에 대한 호칭은 신경질적으로 부르는 "야!"였다.
그러더니 어느 날 본인 사원증을 주며 1층으로 내려가서 출근도장을 찍고 오라는 업무를 시켰다.
사원증 찍는 업무를 어디서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배운 것도 없었다.
"야! 사원증 1층 가서 찍고 와"
사원증을 받아 들고 벙찐 나는 어디서 찍어야 하냐고 물을 새도 없이, 그녀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뭐 해? 나가!!!"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다른 인턴들이 다 있는 공간에서 윽박지르는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
일단 들고 내려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 자신이 너무 처량하고 초라했다.
갑자기 2층에서 "야!!!" 하는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리며 그녀가 나를 강하게 째려보며 내려온다.
그러더니 내게서 사원증을 확 뺏으며 어딘가로 가서 태깅하더니 윽박지른다.
"야! 아 C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를 했어야지! 아이C"
정말 충격이었다. 본인 출근도장을 남에게 찍어달라는 것부터 문제이고, 오늘 처음 본 사원증을 어디 가서 찍을 줄 알고 준 것일까, 내가 물어볼 새도 없이 나가라고 외친 본인이 아니던가.
21살 , 나는 휴지 두루마리를 2-3개 다 쓸 만큼 한참을 울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는데 , 앞으로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필 그 시기, 난 평판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어떤 청년이 입사를 위해 A대기업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인사담당자가 과거 단기 계약직으로 일했던 업체에 전화하여 그 청년의 평판을 물어봤고, 그때 전화를 받은 한 동료가 그를 안 좋게 평하자 채용을 포기하고 말았다.'
등의 이야기였다.
당시 소심했던 나 같은 유형은 , 내 평판에 손해가 갈까 싶어 그런 에피소드를 읽게 되면 부당한 상황에서조차 아무 말 못 할 정도로 움츠러든다. 세상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하인처럼 그들을 떠받들고 한 달을 더 버티다 나가게 되었다.
약 5개월간의 인턴직, 정말 끔찍했고 트라우마로 깊게 남겨질만한 기억이었다.
그럼에도 인턴직을 하며 처음 만난 함께 일했던 2명의 동생들이 내게 힘을 주었다.
"저한테는 안 그러는데 왜 유독 언니한테만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이상하네요. 저분(그녀)이 분명 잘못된 거예요."
"제가 봤을 때 저분(그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
"언니 이제 (인턴직) 그만둔다고 하니 정말 아쉬워요."
당시 그 동생들이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그 공간을 나가는데, 처음으로 경험하는 하늘을 나는 가뿐하고 가벼운 마음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겨우 이까짓것에 이 돈을 받으며 이렇게까지 감정을 소비했던 게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당시 인턴은 최저시급 이하였음에도 내겐 돈이 정말 필요했었고 , 언젠가 자기소개서에 한 줄 채울 스펙이기에 중요했다.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뻥 차버리고 나가기엔, 내가 놓아버려야 하는 게 있었다.
거의 10년 전 이야기다.
지금까지 그때의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 충격이었고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의 나는 , 이후 회사에서 만난 고단수 2-3명에 의해 오랜 기간 아주 교묘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겉으로는 착하게 대하지만, 무논리에 논리를 입혀 본인업무를 모두 미뤄버리거나 사고책임을 내게 전가하고 쏙 빠져버리는 등..
"내 잘못입니다"를 외치는 순간, 그들은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해 떠벌리며 나를 깎아내린다.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통해 잘못됨을 인식했고, 그 공간을 나오게 되어 다른 동료들과 일해보며 비교대상이 생기자,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해보며 경험치를 쌓는 게 참 중요하다.
공간, 사람, 업무.. 이 세 가지를 바꾸기까지 내게는 큰 도전이었다.
당연히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상대가 내게 불쾌함을 주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녀의 사원증을 들고 곧장 학교 인사팀으로 향해 고발했을 것이다.
아니다. 이미 "야!"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부터 크게 브레이크를 걸었겠지..
트라우마는 애초에 겪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피할 수도 없다.
특히나 사회경험이 없는 20대는 이게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어려울 것이다.
트라우마 상황을 당해보고, 잘못됨을 인식하고,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때 다시는 걸려들지 않는 법을 익혀나가는 법,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법 아닐까.
가장 사랑받아야 할 예쁜 나이에 안 좋은 걸 겪었다는 게 속상하고 화도 나지만 (지인은 어린 나이에 감정적으로 난도질당했다고 표현한다) , 늦은 나이에 겪게 되며 좌절하는 것보다 낫겠다고 자기 위안을 삼아 본다.
나는 그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과 오랜 기간 얘기하고 위로하며 풀어냈고, 심리상담도 받았고, 여행도 갔고, 취미생활을 찾으며 정신과 집중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트라우마 극복이란 없다. 여전히 그때만 떠올리면 몸이 먼저 부들부들 떨며 반응하는 걸 보면 완전히 잊힐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보다 지금 현재 상황이 더 나아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두 번 다시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도록 두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10년 전 그녀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오랜 기간 행한 그들에게 이제 악감정은 없다.
그렇다고 원수를 용서하고 싶은 생각 또한 없다.
다만, 반성 없이 살고 있다면 본인이 행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