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년대 초반에는 학교나 일부 가정에서 폭력이 심심찮게 자행하는 시대였다.
시골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난, 학원에서 알게된 쌍둥이 언니들의 집에 놀러갔다.
아주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나에게 주스를 따라주겠다며, 쌍둥이 언니 중 한 명이 쫄쫄쫄 컵에 따르다가 그만 손을 놓쳐버려 집 바닥에 얕은 홍수가 났다.
내게 트라우마를 준 건 그 다음이다.
언니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진하더니 딸의 머리를 '쫙'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집 안을 날카롭게 울려펴진 그 엄청난 소리에 내 심장은 너무 놀라 밖으로 튀어나올만큼 뛰고있었다.
내 나이 8살..
나도 잘못하면 이 아주머니에게 맞을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른 집에 가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서둘러 빠져나온 이후 두 번 다시 그 집에 놀러가지 않았다.
가정폭력을 본 간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장 친했던 나의 학교 친구도 어머니에게 아주 많이 혼난날이면(엄마를 통해 듣게된다.),
온 몸에 작은 멍이 가득하기도 했다.
친구에게 멍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말했다.
"오빠랑 칼싸움 하다가 이렇게 됐어"
당시 나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네 엄마는 말 안들으면 저렇게 애들을 패서 때려. 잘못하면 원래 그렇게 맞아야해. 엄마가 때리고 이런걸 잘 못하는게 다행인줄 알아."
때는 2000년에 갓 들어선 초반이었다.
요즘들어 엄마에게 말해본다.
"그 때 그렇게 애들 때렸던 엄마들... 요즘이면 손에 수갑차고 아동폭행죄로 감옥에 있을거야."
엄마는 침묵을 지킨다.
"........그땐 그랬지"
때리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고쳐나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훈육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2. 고등학생 시절, 떡볶이 집에서 내가 무척 좋아했던 김말이 튀김 3개를 주문했다.
1개를 2조각씩 잘라주어 총 6조각이 되었고, 떡볶이 국물에 묻혀주시겠다는 아주머니는 6조각 중 1조각을 떡볶이 국물에 빠뜨린채 주셨다. 난 한 조각이 없음을 말씀드렸고, 떡볶이 국물에서 찾아서 다시 주셨다.
다음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돈없는 학생시절, 겨우 받은 용돈을 쪼개고 쪼개서 살아갔던 나이.
두 번이나 반복된 행동을 하는 아주머니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가나서 주체할 수 없었다.
난 김말이를 먹으며 소심하게 흘끔흘끔 아주머니를 째려보았다.
"왜 내 김말이를....."
난 종종 추억에 잠겨 그곳을 찾는다. 맛은 여전하다.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분식가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만큼 난 여유로워졌나보다. 돈도 , 마음도..
돈의 여유가 없으면 조그마한것도 하나씩 다 따지게 되나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사람을 쉽게 미워하게도 되나보다.
'여유로움' 10대땐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 20대가 되어 일찍 돈을 벌며 내게 새로이 생겨버린 감정이다.
3. 수능이 끝난 후, 다양한 직업전문학교에서 교실에 들어와 학교를 홍보하러 왔다.
"안녕하세요. **요리학교에서 왔습니다. 저 또한 **학교 제빵과에 재학중에 있구요. ~~ 제빵을 배우고싶거나 이 분야에 관심있는 학생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그 누구도 대학입학이 확정되지 않았던 시기, 다들 황당하다는듯 그 분을 쳐다보다.
난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백수가 되면 되었지.. 창피하게 요리학교는 안간다.'
몇 년 전부터 그 기억의 한조각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요리를 배워 내 업에 만족하게 되었다면, 요리학교에 가서 요리를 배웠어도 나쁘지 않았을것이다.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무시했다는게 잘못된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본인의 천부적인 재능을 이른나이에 발견할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것이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 비로소 느낀다.
학벌보다는, 하루 온종일 하는 나의 일이 재미있고 성취감을 주고 행복을 주는 일이어야 ,
인생이 풍족하고 더없이 만족스럽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