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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Jun 12. 2023

인생의 출발선이 다르다는것

태어날때부터, 자라오면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이런 생각은 평범하게 자라온 사람들에겐 애초에 느껴볼 수 조차 없는 감정이다.

출발선이 뒤처진 사람들이 이른나이에 자각하고 깨닫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로 주변 또래들의 삶을 잠시만 들여다보아도 본인의 현실상황이 비교적 빠르게 파악되고 분석되기 때문일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일, 나의 케이스는 다소 다르게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출발선은 남들보다 훨씬 앞서있었다. 

부모님은 늘 경제적인 어려움을 입으로만 호소하셨을뿐,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분명 유복했고 좋은 인프라가 갖춰진 가정에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남들과 달랐던 점은 주변 또래들 중 가장 먼저 취업시장에 뛰어들게 되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삶이 과연 맞는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퇴사 이후의 삶을 분석하던 도중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한 사람의 기구한 인생스토리를 귀담아 들으며 내가 자라온 환경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빠르게 얻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


"부모님은 어린시절부터 자주 다퉜어요.  

잘해보고자 했던 사업도 금방 말아먹고, 사춘기 시절 지하 단칸방으로 들어왔을 때의 충격이란 말도 못해요. 원래 어려웠던 집이 더 어려워졌을때의 상실감이란..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교탁에 학생들 거주지 주소가 적힌 A4종이를 놓더니,

쉬는시간에 맞는지 확인 후 동그라미를 치고 들어가라고 하더라구요.  

나름 비싸다는 아파트들이 즐비한 명문학교로 자동배정되어 왔는데, 저는 조금 떨어진 위치의 빌라에서 살았거든요. 모든 친구들이 아마 B1(지하방이라는 뜻)이 적힌 저희 집 주소를 다 봤을텐데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자존감도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때부터였을까요. 

세상 보는눈이 삐딱해진것 같아요.


학창시절 자주 왕따를 당했어요. 부모님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닮아서인지 가끔 저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더라구요. 누군가의 행동이 저를 화나게 만들면 참지 못했고, 모든 아이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도록 소리를 확 질러버렸어요. 순간 엄청난 침묵과 저를 슬금슬금 피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후부터 아무도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왕따가 되는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고, 외로움과 괴로움에 더 이상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고 결단이 들 때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도망치다시피 경기도쪽 중학교로 먼 거리를 통학하며 다녔어요. 


공부는 많이 못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어요. 언제나 하위권을 맴돌았죠.

학교에서의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못했고, 부모님도 늘 다투시고, 아무리 공부하려고 노력해도 잘 안되더라구요.

가난이 날 공부도 못하게, 인간관계도 안좋게, 성격도 안좋게 만든거라고 늘 원망하며 살아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갈 성적도 안되었고, 그럴 형편도 안되서 바로 취직을 했어요.

꽤 유명한 외국계 회사의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했죠. 복지는 나름 괜찮았거든요.

주말 당직때도 자원해서 나오겠다고 하며 쏠쏠하게 챙겼고, 

그 곳에서 매년 계약을 갱신하며 10년을 일했어요. 

처음 몇 년은 계약연장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걱정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히 연장되겠거니 생각했어요.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뀐 어느 날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행하더니,

더 이상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한순간에 백수가 되어버렸죠. 

너무 막막했으나 부모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이었기에 당장 일을 구해야했어요.


여기저기 원서를 넣었고, 10년동안 사무업무 경력을 인정받고 대기업에 속한 파견업체의 직원으로 입사하게 되었죠. 

파견직원의 계약기간은 2년이기에, 당장 2년동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나름 열심히 일을 했고, 2년이 도래한 시점에 계약직 전환을 알아보겠다는 상사 말만 믿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계속 얘기가 없길래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9일 전 계약 만료 통보를 받게 되었어요.  

열심히 하면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그 회사의 계약직으로 돌려줄 수 있다는 말 한마디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탓이었을까요. 실망을 넘어서 분노가 악으로 받쳐오르더라구요. 

나름 마음속에 품고있던 기대가 컸던 탓인지 , 엄청난 충격에 3일동안 휴가를 내고 엉엉 울었어요.

다른 동료들 앞에서는 멀쩡한척 했지만, 한 달동안 정신을 못차릴만큼 공황상태에 빠져있었어요.


세상이 매우 불공평하다고 느꼈어요. 원래 이런 감정은 자주 느꼈었죠.

무엇보다 당시 함께 일하는 바로 옆 직원은 저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데다가 정규직이었고, 돈 걱정없이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너무 화가난 나머지 그녀의 결점을 찾아내서 사람들 앞에서 헐뜯고 깎아내리며 비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어요. 밑바닥에 있던 나의 자존감은 그간 그런걸로 채워나갔죠.

이런 저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여전히 노력중이에요.


계약 만료 후, 또 다시 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불쌍하고 처량하더라구요.

내 인생은 왜 남들과 이렇게 다른걸까.. 

평생을 계약직으로 살아왔기에, 9일 전 해고 통보가 위법이라는걸 알고 고소하기 위해 나름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당시 함께 파견으로 일했던, 가정상황이 비슷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대기업을 고소하면 파견회사가 곤란해질텐데, 파견회사가 너를 가만히 둘까.. 

오히려 파견회사와 너의 법정싸움이 될 수도 있어. 더 큰 비용이 들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구. 어차피 못이겨. 그냥 관둬"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게 이득될게 없는 싸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만두었죠.

 

그 시점에 아는 지인분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자 , 주말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주더라구요.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할 돈이 들어온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악바리로 살았어요.


운좋게도 2개월만에 직장을 구했어요.

급여는 기존보다 500만원정도 적어졌지만 정규직이었죠. 그런데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했어요.

시스템 체계나 프로세스라는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하루종일 쉬지도 못하고 일만 했는데도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더라구요. 

버틸 수 밖에 없었어요. 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이니까요.

나의 보너스 월급이라고 여기면서, 회사 몰래 주말 아르바이트도 쉬지 않고 했어요.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려 헬쓱해지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질때까지 말이죠. 

  

그렇게 4년을 버티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가는 올랐는데 급여는 똑같다면 과연 제 월급은 줄은걸까요?

그럼에도 업무강도가 많이 낮아져서 편안하더라구요.

 

고등학교 졸업 후, 첫 회사 입사했을때도 주말근무를 자원해서 했으니, 주말 이틀을 온전히 쉬어본적이 손에 꼽을만큼 별로 없네요. 제 나이가 곧 40이니, 20년간 주말을 제대로 즐겼던적이 몇 번이나 될까요.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겠죠. 

적어도 제 아이는 저와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된다면 제가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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