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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Sep 28. 2023

직장인의 법인카드는 요술카드

직장인에게 법인카드란

첫 회사 입사 1일차 ,  신입사원이 왔으니 다함께 점심식사를 같이하자며 초대받은 곳은 샤브샤브 집이었다.

열댓명 파트원들 사이에 앉게된 나는 샤브샤브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만큼 긴장상태였다. 샤브샤브는 법인카드로 결제되었고, 그것이 직장생활에서의 첫 법인카드 결제건이었다.


부서장님은 가끔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하시며, 어린 주니어급(사원/대리)들을 맛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외식을 거의 안하고 집밥만 먹어온 내게 바깥세상 음식들은 새로웠다.

파스타라는 단어를 몰라서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상황이 발생했고, 인생 첫 리조또라는걸 접하기도 했다.

새까만 밥에 두툼한 삶은 오징어가 올려진 그것의 이름은 '먹물리조또'였다.

맛있게 잘 먹는 나를 보며 선배는 말했다.

"맛있지?"

 

대학생이었던 또래 친구들은 먹고싶은게 있으면 다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점찍어둔 메뉴를 시키곤 했다.

먹고싶은걸 먹고 N분의 1로 가격을 다운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난 상대적으로 사회생활을 빠르게 시작했던 덕분에 , 또래 친구들보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들을 일찍 접했다.

법인카드를 통해.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상사들이 내게 인도해준 맛집들은 신선했다.

당시 상무님은 신입사원인 나와 몇몇 직원들을 데리고 가며 숨겨진 맛집을 소개했고,

그곳은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양꼬치 집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양꼬치를 접했다.

긴 꼬치에 작은 고기가 동글동글하게 끼워진 , 접해보지 못했던 고기맛은 내게 어색했다.

그러나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있는 그 맛은 내게 중국의 맛있는 고기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나중에 지인들과 다시 와서 편한 마음상태로 이 맛을 제대로 음미해보리라 다짐했다.


1년에 몇차례 큰 회식이 있는 날이면, 당시 값비싼 보드카와 양주를 주문했고,

회식때마다 어린나이에 경험하기 힘든 어른들의 값비싼 문화들을 접할 수 있었다.

간혹 임원과 식사자리가 있을때는 주로 고급 한/중/양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가격대를 보면 감히 나의 월급으로 먹기에는 참 부담스러운 곳이다.

'돈이란건 참 좋은거구나'

그 누구도 결제에 부담이 없다. 직장인이 좋은 이유는 법인카드가 있어서이다.


지역맛집, 고기집, 스시부페, 온갖 부페에서 '원 없이 먹는다'는게 어떤건지 알게 되었다.

내 돈이 아닌 회사돈으로 먹을 수 있다는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돈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비싸서 접해보지 못한 메뉴를 보면 평소 없던(잘 못먹는 편이었던 나는) 식욕이 불타올랐다.  


직원 개인들에게는 분기별로 배정되는 복지 예산이 있다.

이 돈은 직원 복지를 위한것이므로  사용처는 묻지 않는다.   

네일아트,마사지,원데이클래스 같은 독특한 이색체험을 하러 가기도 하고,

단체로 한우 소고기 , 호텔 뷔페 , 오마카세 처럼 평소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못 먹는거 빼고 다 먹어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 단계와 범위는 고급스러워지고 높아졌다.

허세 문화인 오마카세를 법인카드로 먹을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회사 직원들과의 대화를 듣던 오마카세 요리사는 말했다.

"법인카드로 여기 온거에요? 좋은회사 다니나보다. 여기 오기 쉽지 않은데"

잠깐동안 애사심이 솟아오른다.


법인카드를 쉽게 사용하는 타부서 직원들을 보면 허탈감이 느껴질때도 있다.

법인카드는 영업부서일수록 사용이 쉽고 잦다.

한 영업사원은 말한다.

"저는 와이프한테 용돈 20만원밖에 못받아요. 그래도 뭐 어때요. 저한테는 법인카드가 있잖아요!"

그는 대부분의 식사를 법인카드로 해결할만큼 상당히 사용이 잦았다.

뿐만 아니라 명절이 되면 남는 부서예산으로 선물을 사서 부서원들이 나눠갖기도 한다며,

영업에게는 접대비 항목이 있어 사용처를 묻지 않는다는걸 알게 되었다.

솔직히 회사돈 남용이라고 생각할만큼 법인카드를 물쓰듯 심각하게 사용하는 직원도 많았다.  

나의 법인카드 사용은 귀여운 수준이라는걸 알게된 후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직급이 위로 갈수록, 영업 부서일수록, 예산이 많은 부서일수록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많았다.

그들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월급에 맞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인카드란, 직장인에게 큰 복지이자 회사를 다닐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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