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순간부터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최대한 나의 휴직을 막아보려고 노력했던 상사는 몇번이고 내게 물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면 안되겠니"
"명절 끝나고 휴가 길게 다녀와서 다시 생각해보는게 좋겠어"
"휴직... 꼭 써야겠니? 휴가 많이 사용하는 방법도 있잖아"
나에겐 쉼이 필요했다.
10년째 정말 열심히 쉼없이 달려왔다.
이번년도는 유독 업무량이 심했고, 잘못된 직속상사를 만나서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을 받았다.
직장 내 큰 일(괴롭힘)이 있은 직후 바뀐 업무는 소모성이 크고 반복되는게 많아 나와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물리적인 업무량에 압도되어 일에 파묻혀 살수 밖에 없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내게 또다른 가시가 다가와 찌르는 느낌이었다.
숲을 보고싶은데 나무만 봐야하는 현실이 너무 속상했다. 난 부품이 되어버렸다.
일을 하다보면 온 몸에 열이 확 달아오르는 증상, 심각한 두통, 몸의 긴장과 경직, 치밀어 오르는 우울감, 화병증세가 자주 발생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고, 업무적인 커리어에서도 큰 희망이 없었다.
물리적인 일을 많이 쳐내다보면 뇌가 굳어 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용량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 와중 회의에서 내게 의견을 제시해보라고 하면 백지장이 되어 우물쭈물 되는 상황까지 발생해버렸다.
생각해보니 이런 증세가 꽤 오랜기간 지속되었다.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해냈던 일들은 기적에 가까웠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꼼꼼함과 타고난 책임감은 , 최대한 흠없이 일처리를 하겠다는 의지로 이어졌고,
이런 상태로 업무를 해내는 와중 내 몸과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아주 깊이.
오랜기간 회사를 다녔으니 이제 일요일 저녁마다 다가오는 월요일이 익숙할때도 되었건만..
일요일 저녁만 되면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젠 내 삶에 대해 회의감이 들고, 나의 존재를 의심하고, 울음이 막 터져 나올 때 쯤..
버티고 버티다 결국 휴직을 선언했다.
새롭게 바뀐 상사는 그런 내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번 어렵게 내뱉은 말인만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부서에서 휴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한달 전에 이야기했음에도 1주,2주,3주.. 벌써 두달째 차일피일 미뤄진다.
나는 상사를 건너 팀장을 찾아갔다.
결국 상사를 조종하는건 팀장이라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1년전만해도 나를 보며 웃어주던 그는 굳은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본다.
임직원의 휴직은 팀장에게 좋을게 없다.
팀에 인원이 줄어들뿐 아니라 업무환경이 직원을 아프게 만들었다는 나쁜 방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회사 내 여러 일들로 피해를 받아 신청한 나의 휴직은, 그도 책임이 있었기에 아주 불편했나보다.
그의 눈에는 나의 병가가 병이 아닌 단순 쉼으로 받아들여진듯했다.
휴직을 말한 이후 상대적으로 줄어든 나의 업무를 언급하며, 일도 없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묻는다.
회사생활을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쏘아붙이며 다음달 말까지 일하고 들어가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부탁하면 좀 더 일하고 들어가줄 수도 있었는데, 거의 반협박과 위협속에 면담이 끝났다.
밑바닥을 제대로 드러낸 그의 모습에 인간적인 충격이 더 컸다.
생계가 달린 직장인은 본인의 이득 앞에서, 피해 볼 상황 앞에서 저렇게 숨겨진 이빨을 드러내나보다.
사람이 참 간사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무너져가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생각했다.
'그는 팀장이 아닌 회사밖에서는 평범한 아저씨일뿐 , 회사 밖에서 직함을 떼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람..
퇴사하면 전혀 볼 일이 없는 사람, 높은 가능성으로 몇년 후에는 이 회사에 남아있지 않을 사람
난 휴직을 위해 고되고 어려운 관문을 뛰어넘는 단계라서 힘든게 맞는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