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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Aug 02. 2024

대기업 퇴사자에게 보이는 현직자들의 본심

퇴사 후 계획은 뭔가요?

"퇴사 후 계획은 뭔가요?"

회사울타리 안의 모든 이가 내게 묻는다.

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는 이것이다.

'언제부터 퇴사를 고민해 왔는가' , '어떤 사건으로 퇴사하게 되었는가' , 퇴사의 방아쇠를 당긴 특정인물은 누구인가' ,

그리고 '퇴사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들의 질문은 복사+붙여 넣기 하듯 늘 한결같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가 퇴사한다고 하면, 궁금한 점이 참 많았다.


오랜만에 퇴사자들에게 연락을 취해 , 퇴사 소식을 알렸다.

그들의 입장은 반반으로 갈린다.

"아니.. 왜? (좋은회사인데)거길 왜 퇴사해?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카톡 받고 깜짝 놀랐어.. 우리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 보자"

그리고 축하하는 반응도 심심찮게 있다.

"볼 때마다 힘들어 보였는데 드디어 퇴사하는군요! 밥 한 번 먹어요. 퇴사를 축하해요!"

"같이 회사 다닐 때 얘기하다 보면, 퇴사하고 싶은데 제대로 말을 못 하는 것 같았어. 진짜 잘됐다."

연애스토리 못지않게 퇴사스토리가 매우 궁금한가 보다. 그들은 궁금함을 주체하지 못하며, 빨리 나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회사 안에 있을 때는 업무이야기만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내가 퇴사자라고 생각하니 본심을 드러낸다.

특히 만날 때마다 업무이야기만 하던 임원직급의 그는 나와 라포가 형성되자 본인의 본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럽다. 나도 진짜 퇴사하고 싶다.."

그는 퇴사를 앞둔 내게 직급과 나이를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대기업 CEO자리까지 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밤낮 쉬지 않고 회사에 충성하며 달려왔다고 한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그에게 어둠의 그림자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췌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대수술을 받고 복직한 지 1년이 된 상황에 그는 참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튼실했던 체력을 믿으며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것, 휴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는 것.   

열심히 앞으로 달려갈 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보이고 있다며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회사가 뭐라고...."

자신의 인생보다 회사를 앞세우며 살아왔던 그는 건강을 잃고 나자 현실이 파악되었다며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50대 초반의 나이로 다른 곳으로 재입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건강이 좋지 않아 지금 회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점, 회사를 나간다고 해도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다는 점이 그를 참 힘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도전하는 내가 매우 부럽다고 했고, 반드시 건강을 챙기고 행복하라고 조언해 준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나를 보며, 어떤 직원은 스리슬쩍 본인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저는 육아 때문에 다음년도쯤 퇴사계획이 있어요."

"저도 진짜 퇴사하고 싶은데 , 집 대출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저 좀 데리고 나가주세요"

그들은 내 앞에서 무장해제가되어 솔직한 본심을 드러낸다.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퇴사, 그러나 마음속에 품고 쉽게 내뱉기 어려운 단어.

퇴사를 선언한 내게 솔직한 마음을 보이는 그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퇴사서류를 제출하면서 , 친하게 지냈던 인사팀의 직원은 내게 묻는다.

"후회는 없어?"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응. 전혀 없어"

그렇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도 후회도 없다.


30대 초반, 누군가에게는 사회생활의 시작이 되는 초심자의 나이일 수도 있다.

나는 11년 경력을 마무리하고 , 이제 나만의 무기인 끈기/성실/인내/노력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입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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