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승진을 앞둔 회사동료이자 40대 중반의 상사와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술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려 말한다.
"나는 내 자녀들이 절대로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는 다시 말한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 애들 때문에 못그만두는거지.
이제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시기니까.
아무튼 애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면, 절대로 내 길은 따라오지 못하게 할거야"
퇴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도 술의 힘을 빌려 말했다.
"저도요. 제게 이 길(11년 회사생활)은 절대 행복하지 않았어요.
종종 행복한 순간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던건 확실하죠.
막판에는 새로 배정받은 업무에 대한 비전도 너무 없어서, 그냥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녔던것 같아요.."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걸까.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늪은 시간이 흐를수록 매우 넓고 깊어져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누리고 있는 '사회적 위치, 복지, 돈' 삼박자를 다 맞춰줄 경쟁사가 없다는걸 알게되면, 감사히 머물게되다가도 , 다시 일을 하다보면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특히 사무직으로 입사하면 종종 다가오는 현타를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것이다.
사무직 직군은 나이가 들수록 이직도 힘들고, 경력을 인정받기 어려우며, 연봉을 유지하여 이직하는것도 힘들다.
"지금 이 나이에 다른곳 이직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연봉의 반만 받아도 감사한거겠지.."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한걸까? 나는 왜 행복하지 못했을까?
대기업이 주는 '사회적 명예, 복지, 돈' 삼박자가 결국 나의 행복 척도와 무관했기 때문이라는걸 깨달았다.
취업준비로 고통받는 20대에게 동일연배의 나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누군가의 부러움과 선망을 받을수록, 나는 그것이 행복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더욱 깊은 늪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의 11년 회사생활을 돌아본다. 일을 하며 행복을 느낄 때는 있었을까?
비즈니스 계약을 맺고 행했던 업무에서의 행복 조건은 '성취감(실력), 집중(흥미), 실력'이었다.
조금 더 풀어보자면 일을 할수록 나의 실력이 업그레이드 되고, 시간가는줄 모를만큼 흥미롭게 집중할 수 있는 일, 일이 경력이 되고 나만의 가치로 인정받는 것, 회사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 곧 나는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런 천직을 비즈니스 세계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휴직을 쓰고 회사로 복직한 내게 업무적인 선택권은 없었다.
사무직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미리 경험하며 깨달은건 공허함뿐이었고,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20대 초반, 회사 입사때만 해도 달콤한 상상에 부풀어있었다.
'대기업에 입사했으니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가 올테고, 오래 일할수록 경력이 되어 연봉이 높아질테고, 그럼 부자가 될 수 있겠지..?'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데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사무직 경력은 물경력으로 변해갔다.
40대 이후부터 갈 곳이 없다는 무서운 현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이 나의 눈에 보였다.
오래 일한 차/부장들은 부자가 아니었고,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대출빚을 갚는 힘없는 아저씨들이 곧 나의 미래였다.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그래도 자녀가 조직생활은 꼭 경험했으면 해요.
조직에서 어우러지면서도 부딪히고, 부당함도 느껴보고, 협업하는 업무도 해보면서 인간관계를 배우는 시간을 몇년이라도 가져보길 바래요. 그럼에도 월급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길을 꼭 찾아보았으면 해요.
회사는 인생에서 잠깐 거쳐가는, 경험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현/전직 직원이 어우러진 자리, 아직 머나먼 자녀들의 길을 우리들이 대신 그려주며 대리만족한다.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 일로 수익까지 낸다면 , 대기업 입사보다 훨씬 가치있을것 같아요"
대기업 직장인의 길, 이 길도 쉽지 않은 길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