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문제는 결국 '돈'
10년 8개월의 회사생활을 끝내고, 퇴사한지 2개월이 지났다.
나는 회사다닐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평일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고, 출근/조직생활/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꾸려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퇴사 후 이 삶이 아주 색다르지 않았던건 6개월의 휴직 덕분이다.
<6개월의 휴직>
아직도 기억한다.
휴직계를 낸 후 마지막 출근일이었던 금요일까지, 인수인계 자료를 만드느라 홀로 사무실에 남아서 늦게 퇴근하는게 일상이었다.
만신창이의 몸을 어떻게 정상으로 회복시킬지 고민할새도 없이 맞이했던 월요일의 아침, 한강에서 나를 비추던 쨍쨍한 햇빛을 기억한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 '쉼이란 무엇일까' , '회사를 내려놓은 나의 선택이 맞는것일까' ,'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수많은 질문과 의문이 내 머리속을 스쳐갔다.
쨍한 빛으로 내 몸을 내리쬐는 11월, '평일의 햇볕'은 매우 낯설었다.
휴가가 아닌 (휴직의) 상태로 맞이한 평일, 지금 이 장소 그리고 지금 이 시간..
회사가 아닌 다른장소에 있는 내 자신이 매우 어색했다.
6개월의 휴직동안 그저 쉬기만 할 수는 없었다.
회사로 복직했을 때 어떠한 불합리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대비해야했다.
<업을 바꿀 준비>
'내가 회사 입사때부터 꾸준히 해왔던 것, 취미로 시작했지만 내 삶에 필수가 되어버린 것, 회사를 건강하게 다니도록 도와준 일' 이제 그것을 업(業)으로 삼기로 했다.
코로나 시기에 이미 자격증도 취득해놓았고, 함께 스터디했던 분들과 연락을 하고 있었던게 다행이었다. 그 분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이 길로 나아가는걸 마음먹을 수 있었다.
이 분야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막대한 시간과 큰 돈이 필요하고, 정말 많은 공부를 해야한다. 매출이 되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도태되는 냉정한 세계이다.
6개월의 휴직동안 쉬면서 공부를 병행했고, 그 일로 소소하게 작은 용돈도 벌어볼 기회도 가졌다.
감사하게도 내게 돈을 지불한 소비자는 나의 재능을 칭찬해주며 본인이 받은 서비스를 매우 만족해했다.
그리고 여기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결혼준비>
고독과 외로움에 휘말리지 않게 큰 힘이 되어준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준비도 함께 병행하였다.
신혼집을 구하고, 신혼가구를 장만하고, 상견례와 웨딩촬영을 진행했다.
프리랜서인 남자친구와 결혼까지의 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건, 단연코 휴직 덕분이었다.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서로 만날 시간이 부족했을것이고 결혼까지 준비하려면 기간이 더 소요되었을것이다.휴직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한 남자친구를 보며 신뢰가 쌓였고, 여유로운 휴직시점에 결혼준비를 할 수 있었다.
<회사 복직>
복직을 한 달 앞둔 시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조심스럽게 전화의 목적을 묻는다.
"복직...하실꺼죠..?"
복직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돈'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지출되는 비용으로 통장의 앞자리가 순식간에 깎여나가고 있었다.
'10년 근속 포상금, 복지포인트, 월급, 성과급..' 복직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보너스들이 눈 앞에 놓여있었다. 나는 그렇게 복직의사를 밝혔다.
복직의사를 밝힌 후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상상도 못했던 머나먼 경기도 외곽의 사업장으로 배정받게 된 것이다.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매일같이 새벽 5시에 눈을 떠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야만했다.
<결혼 전 퇴사>
머나먼 여행같은 출근길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나는 평일에 출근해야했고, 주말은 남자친구가 일을 해야했다. 서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견우와 직녀같은 삶이 반복되었다.
남자친구는 결혼식때까지 어떻게든 다녀보겠다고 버티는 내게 결단을 요구했다.
그는 소소하게 돈을 벌어도 좋으니 휴직기간 준비했던 업을 지속해보라고 하였고, 돈보다 시간이 더 아까운거라며 출퇴근에 애를 먹고 고민하는 나의 퇴사결정에 힘을 보탰다.
결국, 복직 후 두 달여만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회사동료들의 집요한 설득이 시작되었다.
"말도 안 돼! 결혼하고 축의금도 받고 나가야지. 너무 아깝잖아"
"퇴사 철회는 언제든 가능하니, 이번 주말까지만 제발 잘 생각해봐"
동료들이 보낸 장문의 메세지와 연락을 받고도 퇴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건, 본사에서 사업장으로 발령받은 나의 입지도 그리 좋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회사에서 나의 비전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복직 후 2달 반 가량의 출근과 남아있던 휴가를 모조리 사용한 후 퇴사처리가 되었다.
복직의 목적은 '돈'이었다. 그 덕분에 결혼, 혼수, 신혼여행에도 큰 보탬이 되었다.
퇴사 시점, 부서장과 깊은 면담을 주고받으며 말했다.
"10년 넘는 회사생활동안 돈 벌며 쓸 만큼 써봤고, 재테크도 해서 남들보다 조금은 더 모았어요.
이제는 회사에서 참고, 버티고, 견디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어려울것 같아요. 가장 감사한건 제게 '물욕과 사치'가 없다는거에요. 조금 덜 누리고 조금 덜 써도 좋아요. 이제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시간적인 자유를 얻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당장은 힘들 수 있겠지만, 30대에는 다른 시스템을 구축해보고자해요. 오직 근로와 노동으로만 돈을 버는 삶에서 벗어나는게 목표에요."
여전히 지출이 큰 상황이지만, 소소하고 소박한 삶의 태도만큼은 유지하려고 노력중이다.
수많은 큰 일들이 지나가고, 이렇게 인생 제 2막 인생이 성큼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