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대담했던 나의 선택
어느 날, 인사팀 부서장님께 메신저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서 ***입니다. 부서장님, 부서이동과 관련하여 면담을 갖고 싶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면담 요청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회사 입사 후 조용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나의 첫 위대한 도전이었다.
답변은 곧 바로 왔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은 일정이 있어 어렵고 내일 14시 이후로 가능합니다. 20층 L회의실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약속된 시간에 그 장소를 찾아갔다.
입사 후 튀는 행동 없이 조용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개인을 넘어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에 산산조각이 났다. 면담실에 들어가면서도 스스로 되뇌었다.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일로 과연 이런(고직급자) 분께 면담을 요청해도 될 일인가’
‘이 부서를 나오는 것, 그래 그것에만 집중하자..!’
내가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될 것을 , 이런 상황을 겪게 되리라고는 입사할 때는 상상이나 해봤을까.
어딜가나 둥글둥글하고 모난부분없이 잘 어울려 지낸다는 평을 들으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평범한 내가.. 이토록 평범한 내가..
“부서장님, 제가 몇 달 전 진행했던 부서이동 입력(시스템 입력하여 부서이동을 요청하는 방식) 기간에 업무가 바빠 시기를 놓쳤습니다. 뒤늦게 지금에서야 이렇게 면담으로 부서이동을 요청드립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6-7년동안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나오기 직전, 그는 본인이 어떤 행동을 잘못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사라진듯했다. 특히나 그 해는 괴롭히기 위해 아예 작정하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늘 타깃은 나였다. 다른이들에게 똑같은 행동을 할 경우, 얼마나 욕먹을지 알고 있는듯했다. 그에게도 적이 2명 이상이면 직장생활에서 좋을게 없었다. 가장 만만한 한 명(나)에게만 풀어내다보면 삶의 고초가 어느정도 잘 풀렸었나보다.
강약약강(강한자에게 약하고 , 약한자에게 강한 사람). 이 한마디로 그 싸이코급 기질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특성은 딱 그랬다. 높은 직급의 사람에게는 바닥까지 기어다니고, 본인보다 낮은 직급이라면 사람을 봐가며 행동한다. 회사 내 인맥이 넓은 직원, 자기 생각과 주관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나는 다소 어린나이에 입사했기에 인생을 살면서 나만의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그냥 나이 많은 어른이 “이렇다”라고 하면 그런줄 알았고 웃어른의 말은 거절없이 따라야하는걸로 알았다.
그가 자주하는 대략적인 행동들 중 몇가지만 소개한다.
- 연차 사용 못하게 막기(사유 : 일이 많은데 어떻게 사용을 하냐며 업무 핑계, 아직 휴가 쓸 위치가 안된다고 함)
- 휴가를 사용하는 날 업무거리를 만들어내서 연락하기(마치 휴가를 왜 쓰지 말아야하는지 스스로 깨달아보라고 하는 느낌)
- 야근 강요(야근을 해야 일이 많고 성실한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생각)
- 보여주기식 업무 , 쓸모없는 업무 창조하기(그건 항상 타깃인 나에게 시킨다)
- 사고가 터지면 즉시 본인 혼자 빠져나갈 궁리 및 다른직원에게 책임전가
등등등......
초반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세게 부딪혔어야 했다. 무조건 죄송하다며 수긍하는 나의 모습에, 어디가서 말 한마디 안하고 가만히 있는 그 모습에 그는 본인의 행동이 옳다고 확신한듯했다.
그에게 회사생활은 본인이 공순이 시절 겪었던 것처럼 밤낮없이 일해야하고 힘들어야 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듯했다. 매일같이 물 호스를 내 입에 꽂아넣고, 물을 틀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업무 특성상 한없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작은 실수가 발생하면 엄청난 일이 발생한것처럼 길길이 날뛰어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티는 안내려고 했지만 내 신경도 매우 예민해졌다. 그런 내게 뭔가가 거슬렸는지 툭하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내게 면담을 요구했다.
회의실에 들어가서 하는 말은 이랬다.
내가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고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문제가 있다며 뒷받침될만한 자잘한 실수담을 모두 언급한다. 듣다못해 일이 정말 많아서 그런거라고 쏘아붙였더니 어른에게 대하는 태도부터 나의 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말한다. 바로 죄송하다고 하며, 마음을 다잡고 일이 너무 많아서 요즘 실수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밤 12시를 넘기고 새벽까지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하는게 그의 답변이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어느날은 회의실로 불러 얼마 전 일어난 업무적인 사고에 대한 너의 책임이라는걸 빨리 인정하라고 하며 답변을 요구했다. 사실 사건의 책임자는 그였다. 이게 정말 나의 책임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일부 사건에 내 행동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그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고 책임소재를 넘기더니, 뜬금없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언급하였다. 이렇게 내 스스로를 의심하고 위축되게 만들어 끊임없이 자아비판을 해왔던게 나의 초반 모습이었다.
그의 괴롭힘은 해가 갈수록 점점 교묘해졌다.
본인의 자잘한 업무부터 프로젝트성 업무를 다 내게 미뤄버린 후, 별 일 아닌업무로 치부하며 성과를 깎아버리기를 몇 년째 반복했으며, 교묘하게 관찰하고 판단해버린 나의 행동들을 다른 직원들에게 험담하며 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난 윗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찍힌 사람이 된듯했다. 친한 부서원들도 점점 윗사람들을 의식하는듯했다.
이런 이미지가 점점 굳혀져가자 그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졌다.
무료 주말 출근 강요, 퇴근을 몇시간 앞둔시간에 외근 보내기, 성과지표 조작, 티끌하나 잡아내려고 뒤에서 나와 내 모니터를 관찰하는 모습(모니터에 다 비춰짐). 늘 느꼈지만 나이먹고도 저렇게 교묘하고 비열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인사 부서장과의 면담에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해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업무를 하며 습득한 것들을 다른 부서에 가서도 충분히 펼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함께 지내왔던 수많은 동료들과도 잘 지내왔고 인간관계에서도 내게 특별한 결점을 발견하지는 못했기에 어디서나 잘 적응할 자신이 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업무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 부서에서 오랜기간 쌓으면서 생긴 저만의 노하우와 능력을 다른 부서에서도 펼쳐보고 싶습니다. 그 부서에 제가 분명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할만큼 정말 성심껏 일해왔습니다.”
그 분은 말씀하셨다.
“그렇군요. 저도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부서이동이라는건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 곳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 있어야 하거나 혹은 나갈 사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으니요.”
나는 답했다.
“부서장님, 제가 오랜기간 한 부서에 있었는데요. 사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다른 그룹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꼭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간절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오랜기간 몸담아왔던 그 구질구질한 부서를 나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