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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Aug 09. 2020

비행기에서 만난 친구, 펨

12시간 행복했던 비행담

외국을 동경하던 나의 어린시절, 늘 상상만 해오던 작은 꿈이 있었다.

비행기 옆자리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꿈


20대가 될때까지 외국에 나가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과 외국문화는 나에게 동경을 심어주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영어공부를 유난히 좋아했었다.


읽기/듣기 위주인 학교 영어공부는 전혀 흥미가 없어서 늘 중하위권을 맴돌았으나,

유창하게 외국인과 대화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늘 설레었던게 영어였다.    


'맘마미아' 를 자막없이 보며 한편의 동화같은 삶을 꿈꾸기도 했고 , 

'금발이 너무해'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해외사이트에서 영화 대본을 구해 열심히 따라하며 암기했던 시기가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었다.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 편한곳이라는걸 깨달은건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비행기 안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번 타본 비행기 옆자리의 외국인들은 처음에 방긋 인사만 하고 개인플레이를 즐기거나

바로 잠들어버리는 등 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듯했다.

나의 그 소박한 꿈은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는걸 깨닫고, 이후 별 생각없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얼마전 중동에서 한국으로 오는 대한항공 여객기에서의 일이었다. 


약 12시간의 비행을 참아내야했기에, 창가쪽 좌석으로 겨우 얻어놓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한 동남아계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다. 

정중하게 나의 자리임을 말하자 몰랐다고 하며 바로 옆자리로 비켜주셨다.


당시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그 아주머니가 읽고 있는 빨간 책을

대충 보니 성경책인듯하였다.    

옆에서 눈대중으로 슬쩍 보다가 흥미가 생겼다. 

어떤 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 누구인지 참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 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외국인 앞에서 말하는게 하나도 무섭지 않다. 

문법도 다 틀리고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그들 입장에서 난 외국인이기 때문에 틀려도 이해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인 앞에서 스피킹 할 때 틀린걸 짚어낼까봐 더 위축되는듯하다.    


“ You reading Bible , Are you a Christian?”    


이 말을 시작으로 들은 그녀의 정보는 대략 이렇다.    

필리핀계 이스라엘인이고, 남편이 필리핀계 군인인데 이스라엘로 발령이 나면서 30년동안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과 남편은 크리스찬이지만, 자녀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유대인으로 생각하고, 유대교를 믿고 있단다. 

30년동안 그 나라에 눈이 내리는걸 딱 한번 봤었고, 비슷한 시절 전쟁을 한 번 경험했다고 한다. 전쟁은 매우 무서웠고 있어선 안되는 일이며,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평온하게 살아가기에 참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6개월전부터 계획했던 성지순례였으나, 당시 중동의 상황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이었다. 솔레이마니가 사살되고 이란이 이스라엘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던,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을 최대절정의 시기에 가게 하필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가기 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비행기값과 숙소값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뜯어말렸을 정도였다. 


다행스럽게 난 무사히 순례를 하고 감사기도를 하며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현지인에게 평온하고 안전한 나라라는 말을 들으니 , 참 충격이 컸다.


그녀는 이미 몇십년동안 수없이 주변국들로부터 협박을 당해왔어서 그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북한이 우리나라를 수없이 협박하고 위협해도,  미동도 없이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듯이..!  


말문이 트이자 궁금한것들이 생겨났다.

어린시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해 수없이 신문에서 봐왔던터라,

그녀는 현지인이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순례를 하면서 우리 단체는 대부분 팔레스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오랜기간 가꾸어온 삶의터전과 생업을 이스라엘인들에게 빼앗겨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을 도와줘야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녀는 결국 두 민족은 뿌리가 같다고 보기 때문에 서로 돕고 도와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을 핍박하는건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듣는 내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TV에서만 듣던, 교과서에서만 보던 먼 나라의 이야기를 옆 자리 현지인에게 생생하게 듣게 되다니..


그리고 외국인들이 잘 모르는 성지순례 장소도 덤으로 알려줬다.

 

비행기를 타는 12시간동안 우린 삶의 철학,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적인 부분까지 공통사가 많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깔깔 배아프게 웃어보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게 되었다.   

번역기가 있다면 해외여행은 가능할지라도 사람간의 관계는 쉽게 맺어지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각 자 일행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변의 한국인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서로 일행인줄 알았다고 하며, 어떻게 친해졌는지 나에게 물어보며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나와 필리핀계 이스라엘 분에게 항상 모든일이 잘 풀리고,  늘 행복하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네주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정말 젠틀하고 친절하다.

나에게는 평생동안 잊지 못할 비행이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비행기 안에서 나에게 멋진 친구가 되어준 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그녀가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 선물로 준다는  Made in 예루살렘 빨간묵주는

매번 나에게 행복했던 비행기 안의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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