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가급적 5일 이상 사용하여 연차 사용 바랍니다. 단, 권장사항이며 필수 사항은 아닙니다.'
동료들끼리 묻는다.
동료 A : "휴가 언제가요?"
동료 B : "저는 방콕 비행기표 예약했어요. 월-금 5일 사용했는데 그 전에 들어와서 시댁에도 들르려구요."
토일+월화수목금+토일 , 이렇게 쉬면 9일정도가 나오는데
미국, 방콕, 유럽 , 제주도.. 등 다양한 국가에서 휴가 보낼 여행지를 정해놓았다.
해외여행... 비행기 타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내게 해외여행은 굉장히 생소하고 비싼 사치였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들처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설레였다.
어떤 회사는 휴가도 제대고 사용을 못한다는 말이 있던데, 이 회사는 휴가에 굉장히 자유로운가보다 생각을 했다. 어떤 선배는 내게 말한다.
"눈치보지 말고 사용하세요. 우리 회사는 그런거 자유로워요. 그리고 휴가는 본인 권리이니 충분히 즐기다오세요 ^^"
소심했던 나는 꼰대에게 휴가를 언제쓰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사실 내가 휴가일정을 정해서 통보할수도 있었으나, 신입이기에 상사가 원하는 일정에 맞춰 사용하는게 마음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것 같았다.
나 : "책임(가명)님, 저는 휴가를 언제쯤 쓰는게 나을까요?"
꼰대 : "휴가..? **씨.. 휴가라니.."
나: "네..? 휴가 쓰라고 전사 공지 올라온걸 봤는데요.."
꼰대 : "지금 업무가 이 난리가 났는데 휴가를 쓴다는게 말이되니" (*실상 : 업무는 늘 그렇듯 똑같은 상황)
나 : "지금 다른 선배들은 다 휴가 일정 잡은걸로 알고 있는데요."
꼰대 : "지금 걔네들이랑 너랑 비교하는게 말이 되니, 걔네는 지금 짬이 몇년차인데.. 경력자들이고.. 너는 신입이잖아"
그 말을 들은 나는 '신입은 원래 그런건가보다' 하여 휴가 일정을 내지 않고, 공식적으로는 보류하겠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선배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똑부러지는 성격이기에 꼰대는 공식적으로 보장받은 그들의 휴가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랬다가 어떤 반격이 들어올지 충분히 알고 있는듯했다.
옆자리 선배는 5일동안의 휴가를 사용하고나서 얼마 안있다가 또 휴가를 사용한다고 한다.
옆자리 선배 : " 저 8/20-8/22까지 휴가에요"
나 : '또..?'
꼰대 :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승낙함)"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심지어 그 일정은 선배가 가장 바쁘게 업무처리를 해야하는 상황임에도 꼰대는 그 즉시 알겠다고 했다. 그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완벽하게 다른 잣대가 적용되었다.
회사에서 동계휴가를 권장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똑같았다.
나 : "회사에서 휴가를 사용하라는 게시가 또 떴던데요.. 혹시 저는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건가요?"
꼰대 : "지금 업무가 이렇게 바쁜 상황인데.. 그리고 선배(본인)가 지금 휴가를 못가고 있는데 네가 무슨 휴가니?"
회사에서 연차를 사용하라고 뜬 게시는 뭔지 묻는 내게 그는 지속적으로 짬의 문제를 거론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꼰대 : "나처럼 돈으로 받아. 1년 합치면 100만원 넘게 받는데 너도 나처럼 돈으로 받으면 되잖아. 얼마나 좋니, 돈으로 받아. 아직 짬도 안되는데 네가 무슨 휴가니"
나에겐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간 업무 피로감과 사회생활의 고달픔을 당장 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깟 100만원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나는 너무도 망가지고 있었다. 돈 되는 연차수당은 내게 아무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한없이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그러는 내게 꼰대는 로보트처럼 말한다.
꼰대 : "연차는 반드시 사용해야 할 때, 하루나 이틀정도씩 사용해라. 3일 이상 사용하면 업무에 영향을 주잖니. 회사에서도 업무에 영향을 끼치면서까지 무리하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하진 않아"
그는 방금 말한 본인의 말이 굉장히 타당하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내가 휴가에 대해 물을때면 꼰대는 이 말을 끊임없이 내게 세뇌시켰다.
"회사에서도 업무에 영향을 끼치면서까지 무리하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하진 않아"
다음년도 휴가철이 되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소심하게 선수를 쳤다.
" 평일 2일 휴가 사용하겠습니다!"
여행지는 대만이었다.
이 대만 여행을 위해 나는 상당한 야근을 해야했으나 ,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간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나 공항에 내려 와이파이를 잡고 카카오톡을 켜는 순간 100통 이상 와있는 채팅방을 보고 실성할뻔했다.
주말 프로젝트를 매주 해오면서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내가 비행기를 탄 그 날, 갑자기 모든 직원들을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하여, 매주 진행하는 주말 프로젝트에 만반의 준비를 기울이여야한다며 해야할 것들을 쭉 읊고 있는것이 아닌가..
공항에 내려서 휴대폰을 켜자마자 너무 감정이 격앙되었다. 나는 그에게 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다른 직원들도 휴가때는 모두 참석하지 못했듯, 저 또한 토요일은 어차피 휴가중인 상황이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걸 아실텐데요. 그 때 참석할 인원들만 초대해도 충분한 상황이라고 보는데요. 평소 이렇게 단체방을 만든적이 없었는데 제가 입사 후 처음으로 낸 휴가철에 이렇게까지 꼭 하셔야하나요?....(등등)'
그리고 그보다 더 긴 어마무시한 장문의 답변을 받았다.
마치 로보트처럼 앵무새처럼 얘기하는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해야하며, 이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는 네가 그렇게 생각할만큼 평범한 프로젝트가 아니며....(등등)'
그래서 휴가에 와 있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건지 당최 뭔 말을 하고 싶은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꼰대는 다른 사람들이 무수히 사용한 연차와 휴가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입사 후 처음으로 사용했던 그 2일의 휴가가 참 기억에 남았나보다.
꼰대 : "너 휴가 다녀왔잖아. 내가 너 대만으로 휴가 보내줬잖아"
다음년도가 되어서도 꼰대는 다른사람들 앞에서 이런말을 한다.
꼰대 : "**도 작년에 대만으로 휴가 다녀왔어. 내가 걔 휴가도 다 보내줬어."
나는 기가 차서 답변했다.
나 : "아...2일 쓴거요?"
이틀의 휴가를 사용한것조차 이렇게 눈치를 보고 있을 때,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동료들은 5일 이상의 휴가를 내고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