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이주(移住)기
나일롱 끈,
주변에 흔한, 그래서 구하기도 편한 그것을 여기선 구할 방법이 없었다.
이삿짐을 싸려면 기본으로 박스, 끈, 테입, 가위, 칼등의 도구가 있어야 한다. 책이 2천권이 넘으니 박스 이사를 하려고 맘 먹었지만, 짐 전체를 박스로 싸긴 비용이 부담되어 끈으로 묶어 가려고 했는데.. 시내곳곳 구석구석, 크고 작은 마트과 백화점에, 인근 건축자재 마트 몇 곳까지 둘러 봐도 구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으로 이미지를 찾아 직원에게 보여줘 봐도 고개만 저을 뿐.. 한국의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1~2천원이면 살 수 있는 나일롱 끈을 인터넷으로도 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명 '따이공'이라 부르는 중국과 인천, 평택을 오고가는 보따리 상들이 주로 사용하는, 평화시장에서 이불같은 것 사면 담아주는 나일롱 쌀푸대자루같은 재질의 허접한 보따리를 만물상 구석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치만 제품 자체가 대체로 여물지가 못하다. 남대문 시장에 파는 젤 싼 이민가방이 더 나을텐데.. 패킹을 하다 조금만 힘을 주어 당기면 '부욱~'하고 찢어지거나, 플라스틱 지퍼 자체가 견고하지 않아 잠기지도 않는다. 잠긴다해도 금방 터져버리구.. 먹지도 못할 '비지떡'이란 이런 것일게다. 현 시점에선 별 다른 대안이 없었고, 이 만한 방책도 없었다. 힘 조절도 적당히하고, 지퍼 잠근 후에는 안 터지게 테입으로 칭칭 동여 메면 될테니까... 그렇게 해서 나온 열다섯 개의 보따리를 입구와 가장 가까운 방에다 쌓아 둔다.
주방 짐이나 개인 짐은 혼자서 차근차근 싸면 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책들이었다. 양이 많아서 문제라기 보다는 사다리타고 올라가 책 열권 들고 내려와 박스에 담고, 다시 올라가 열 권들고 내려오고.. 생각만으로도 맥빠지고 다리가 후달거려온다. 할 수 없이 주변에 사는 지인 단톡방에 SOS를 날렸다. 짐 쌀 때 도와 주겠다고 말했었던 몇 몇 친구들도 있었고 해서..
무척이나 더웠던 유월 독일 한 낮의 시간, 시간이 허락하는 세 친구의 도움으로 우려했던 책 포장은 비교적 수월하게 치렀다. 그렇게 쌓인 책 상자가 무려 70여 상자. 이사업체에서 짐 나르러 왔다가 행여 이것보고 포기할까봐 홀과 북 카페에다 한 뭉텅이씩 두 곳에다 나눠 쌓아 놓았다.
짐 싸는 것도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콩밭에 가 있었다. 이사 갈 곳도 없는데 짐만 싸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6월초의 어느 날.. 띠리륑~~ 새 메일도착 알림음듣고서 무심하게 메일이 훌터 보는데. 앗!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일이다.
늘 봐오던 'Unfortunately~'나 'leider('안타깝게도'란 의미의 독일어로 메일의 서두에 즐겨 사용한다')가 아닌, 'interessant_'흥미로운'이란 의미의 독일어'로 시작하는 회신이 도착했음을 알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