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이와 시엄마

bgm. 마크툽-오늘도 빛나는 너에게

by 맥켈란

시엄마는 나를 복순이라고 불러주신다. 내가 한 식구가 되어 가족이 더 행복해졌고 오빠가 더욱 빛나는 사람이 됐다며 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신다. 참 민망하고 감사하다. 첫 만남 때, 품에 안겨드린 100송이 꽃다발. 결혼했던 해, 시엄마 생신 때 쓴 손편지. 9년간 해드린 사랑은 고작 그거뿐인걸, 시엄마는 날 볼 때마다 그렇게 복순이를 찾으신다.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데, 그중 제일은 오빠와 시엄마가 아닐까 싶다. 내 나이 28살 때 31살 오빠가 울면서 청혼을 했다. 함께 부둥껴 안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통통 살이 오른 발개진 두 눈덩이를 비비며 넌지시 한 마디를 던졌다. “부모님 먼저 만나 뵙고 평생 할지 말지 볼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은 맏며느리의 막내딸로 살아온 내겐 결혼은 가족 대 가족이라는 조금은 슬픈 신념이 생겨났다.

시엄마를 만나고 오빠에게 미안해졌다. 오빠만 보더라도 훌륭한 부모님 품에서 자랐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확인 사살하고 싶은 내 이기적인 기우에 부끄러워서다. 서초동 서래마을 서래본가에서 만나, 시엄마와 나는 비빔냉면을, 오빤 갈비탕을 먹으며 신나는 수다를 떨었다. 준비해 간 100송이 꽃다발 덕분일까, 날 바라보는 시엄마 눈동자 안에는 하트가 꽂혀 있었다.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 이유도 찾고 싶지 않을 만큼 어머니께 뻑 가버렸다.

막내로 자라온 두 남녀는 넘치는 양가 보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독립을 했다. 친정과 시댁이 다른 점이 있다. 시댁은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친정은 무소식이 무슨 일이다. 아들 셋을 둔 시엄마는 온 가족이 한 동네에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셨지만, 일 년에 고작 서너 번 정도 아들 며느리들과 함께 하신다. 명절은 신정 때만. 생일은 몰아서 합동 파티. 어버이날은 아들들하고만 저녁식사. 제사도 없는 며느리 천국 시댁이다.

“아가들아~내가 많이 깨어 있잖냐! 이런 시엄마 못 봤지? 뭐하러 피곤하게 다 챙기고 산다냐. 내 놀기에도 바쁜데. 너네도 부지런히 여행 다니고 사랑해라!” 호탕한 전라도 여전사는 자기애가 강하다. 오빠의 탄탄한 자존감은 분명 시엄마에게서 나온 거다. 자신을 위해 바다 건너 세상들을 다니시고, 온전히 손주 손녀를 돌봐주는 삶을 결사반대하신다. 친목모임만 다섯 개로 우리 가족들 중에서 제일 바쁘게 사신다.

다니시는 헬스장에서 ‘왕언니’로 불릴 만큼 리더십과 입담도 대단하시다. 2시 탈출 컬투쇼에 보낼법한 재미난 에피소드 보따리를 풀어내시고, 성대모사뿐만 아니라 표정도 비슷하게 따라 하며 우리 배꼽을 잡으신다. 정말 매력 부자다. 시 아빠는 전생에 한 나라가 아니라 몇 개국은 구했나 보다. 넘치는 사랑으로 날 웃게 만들지만, 훅 들어오는 위로로 날 울리기도 하신다.

시험관으로 어렵게 얻은 두 생명을 하늘로 보내고 나서다. 병원으로 찾아와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친정엄마가 미워서, 시엄마가 궁금했던 밤이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으셔서 내심 서운했다. 훗날 그 이유를 오빠가 털어놨다. 내가 너무 가여워서, 짠해서, 통화하면 약한 소리 하실까 봐 못하셨단다. 대신 오빠에게 전화해서 소리 지르며 통곡했다고. 다시 한번 시험관 소리하면 둘 다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어머니...

한 달쯤 지났을까. 어머니께 장문의 카톡이 왔다. 이제야 나를 안아줄 용기가 생겨서 미안하다고. 다시는 내 몸과 마음에 해로운 일을 하지 말라고. 언제나 너네 뒤엔 내가 있다고.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너는 욕심부리지 말고 살아라. 사랑한다. 아가야’ 소원이 세 가지 있는데, 시엄마처럼 살고 싶다가 그중 하나다. 나를 더욱 빛나는 사람이 되게 해준 어머니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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