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일생을-휘성
오빠. 잘 지내?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샴푸 향이 느껴지는 가을이라 그런지, 오빠가 문득 궁금해졌어. 내 첫사랑. 이상연.
오빠는 24살. 나는 21살. 우린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 한 어학원에서 입학 신청하는 날에 처음 만났지. 중앙에 놓인 기다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날, 오빤 느림보 걸음으로 빙빙 돌며 차분하게 나를 바라봤어. 오빠의 졸린 동선에, 내 시선도 슬며시 따라간 걸 보면 우린 첫눈에 반했었나 봐.
참 웃기지. 오빤 날 일본인으로 오해했고, 난 오빠가 이연걸 판박이라 당연히 중국인으로 생각했지. 한참을 서로 보다가 오빠가 내게 다가와서 했던 첫마디. “웨얼 아 유 프롬?” 나는 사우스 코리안이라 했고, 오빤 어린 소녀처럼 폴짝 뛰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걷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고, 허그를 하며 집 앞에서 헤어졌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로맨틱했던 나날이었던 것 같아.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공유랑 고은이랑 캐나다 퀘벡에서 예쁜 사랑을 일렁였던 것만큼, 우리도 참 예뻤다. 어쩌면 먼 타국에서 이뤄진 사랑이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방울방울. 기억나? 오빠가 내게 처음 사준 칵테일이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이야. 학교 앞 펍에서 오빤 기다란 컵에 나오는 칵테일을 주문하면서 내 귀에 속삭였어. “이거 여자 쓰러트리는 술 이래” 살짝 두 볼을 붉히는 오빠가 너무나 귀여워서 뽀뽀할 뻔했어. 했나? 그날 뽀뽀하긴 했어. 둘이 취해서. 다만 여자가 아닌 남자를 쓰러트린 술이 돼버렸지만.
그러고 보니, 우린 참 건강한 연애를 했더라.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햄버거집에서 배를 불렸지. 교내 공짜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카페서 스터디를 하는 일상을 살았잖아. 윙즈 데이인 수요일이 되면 산더미처럼 쌓인 치킨 윙을 뜯고 맥주를 꼴깍꼴깍 되며 깔깔 됐던 이벤트도 있었지.
오빤 정말 한결같았어. 늘 따뜻하게 날 배려했고 항상 집까지 바래다줬어. 버스로 오빠네 홈스테이까지 한 시간이나 더 가야 하는데도 말이지.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오빠가 자주 했던 말이 뭔지 알아? “넌 왜 네 옆모습만 보여주니? 내 눈도 좀 봐줘” 너무나도 달콤해서. 부끄러워서 간지러워서 그랬어. 다 알았으면서 왜 짓궂게 그랬어?
휘성 3집 앨범 14번 트랙 ‘일생을’. 우리 둘 다 푹 빠져서 자주 들었던 노래야. 내가 지내는 홈스테이 집 거실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와인을 홀짝이며 몽롱한 대화를 나눴었지. 커다란 멍멍이 로이도 우리 옆에 누워서 기지개를 켰었는데. 그날이야. 우리가 처음 키스를 한 날이. 한잔 두 잔 기울이며 우리 고개도 기울였지.
함께 한지 일 년쯤 안돼서 나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어. 오빠는 그 날을 자꾸 부정했지만 디데이는 오드라. 우린 ‘잠시간 안녕 여행’을 계획했지. 한 달 동안 펼쳐질 캐나다 횡단 여행 중 오빤 밴쿠버와 빅토리아섬까지 함께 하기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를 탔고 한인식당에 가서 오만 원짜리 맛없는 감자탕을 먹었어. 빅토리아섬에선 내 몸 반만 한 갈매기들에게 빵 쪼까리를 던져줬지.
여행은 찰나. 정말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이 왔어. 여행 내내 내 손 부어있던 거 알아? 오빠가 버스 안에서까지도 한시도 안 놓더라. 행복했고 슬펐어. 터미널에서 한참을, 말없이 껴안고 있었지. 정말 우리 스물이었다! 다음 도시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려고 할 때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에게 쓴 손편지를 주고받았어. 안녕. 100일 후에 만나.라고 넌지시 건네자 오빠 터지더라. 이건 비밀인데, 나도 버스 안에서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어. 세장이나 쓴 장문의 러브레터를 읽으며. 근데 울다가 한번 웃었어. ‘너 바람피우면 안 돼’라는 문구에.
3개월은 후딱 갔고 오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전화했어. 당장 만나자고.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와서는, 오빠가 입은 롱 점퍼 속으로 내 얼굴을 묻었지. 나 안 달아나. 숨 막혀. 하며 장난을 걸었고. 우리 정말 스물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ing. 영원할 줄 알았던 상연과 경미의 로맨스는 오빠의 취업으로 끝이 났지.
난 한창 놀던 대학교 2학년. 단풍만 흩날려도 까르르했던 참 좋은 시절이었지. 오빤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뤄 여의도 증권가에 섹시하게 입성했어. 매일 야근 회식으로 전전긍긍되는 미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꼬마였던 것 같아. 평일에 못 만나면 주말에 보면 된다며 보고 싶은걸 참았는데, 주말에 쉬고 싶다는 오빠의 말이 얼마나 서운했던지. 토요일에 잠깐 만나도 꾸벅꾸벅 병든 병아리처럼 졸던 오빠를 이해했더라면 우리 사랑은 영영이었을까? 내 생일까지 잊어버린 오빠의 모습을 보고 결국 난 이별을 고했지. 가장 많이 울었던 생일이었다. 놀라 뛰어온 애경이를 붙잡고 했던 말 떠올리면 지금도 이불 킥이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러다가 3년 후 우연히 오빠를 발견했어. 어느새 나도 취업해서 여의도에 있는 한 신문사에서 미생이 되어 일했던 시절이었지. 매미가 씨끄럽게 울던 한 여름이었어.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오빠가 팔을 걷어 올리고 석봉토스트집 앞에서 허겁지겁 토스트랑 바나나 셰이크를 먹고 있더라. 웃음이 났어. 여전히 배고픈 건 못 견디는구나. 참 한결같아. 반가웠어. 너무나도 인사하고 싶었는데 그냥 횡단보도를 건너 회사로 들어갔어. 오빤 아름다웠으니까.
왜 카톡 명단에 오빠가 남아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가끔 카사보는데 예쁜 와이프랑 아들내미랑 잘 살고 있대? 신데렐라랑 백설공주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해야 해. 비록 첫사랑과의 사랑은 망쳤지만, 나는 지금 인생의 끝사랑과 예쁘게 사랑을 일구며 살아. 첫사랑 오빠랑 끝사랑 오빠는 닮은 점이 참 많은 거 알아? 닭띠, O형, 177cm, 막내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따뜻하고 한결같은 꿈돌이. 오빠. 나 전생에 한 나라만 구한 줄 알았는데 몇 개국 통일시켰나 봐. 그만큼 하루하루 감사하며 사랑하고 연민을 느끼며 살아가.
오빠. 다음 생애에는 만나지 말자. 나 이 세상 끝사랑과 저 세상에선 첫사랑이자 마지막 짝꿍이고 싶거든. 근데 남편이 다음 생은 없을 거래. 오빠. 이제 진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