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재오빠

bgm. 소유, 정기고-썸

by 맥켈란

썸도 아재가 됐다. 요즘엔 4귀기 전이라 해서 3귀다라고들 한단다. 암튼 나도 삼겼던 남자가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만난 덕재오빠다. 웃겼고 폼났다. 웃길 줄 아는 멋쟁이 신사인 오빠는 로맨스도 아는, 영화 맘마미아에 나오는 콜린 퍼스 같은 덕재였다.

첫 수업. 늘 시작은 열정 가득한 나답게 맨 앞자리에 앉아 허리를 세웠다. “귀여워요”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덕재오빠가 내게 건넨 첫마디다. 뭐지. 이 바람둥이 같은 대사는.. 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덕재오빠가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고 있었다. 막 잘 생긴 건 아닌데, 눈코입이 서로 어울렸다. 뒤로 쓴 볼캡도 꽤 귀여웠고, 최애 과자인 다이제스티브 초코맛을 반이나 덜어주는 감동까지 안겨줬다. 우리는 수업 때마다 제일 앞에 나란히 앉아, 레스비와 다이제를 나눠먹는 학원가 공식 베프가 됐다.

오빠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남자였다. 하루하루가 신이 났던 시절이라, 지금도 가끔 오빠를 떠올리면 헝헝 빙구웃음이 나온다. 말장난을 잘 쳤던 오빤 손편지도 자주 써주는 로맨티시스트였다. 삼겼던 오빠랑 대학로에서 첫 데이트를 했던 날이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웃고 놀았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자리에는 한 장의 엽서가 놓여 있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앞으로 혜화동을 올 때마다 내 생각이 날 것 같다는, 조금은 간지러운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씨익 웃으며 오빠를 바라보자 오빠가 손을 내밀었다. “가자!” 그런데 계산대를 훅 지나가는 거 아닌가. 내가 손을 뒤로 당기자, “아. 우리가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 그냥 공짜로 해주신다고 하셨어” 당시에 그 말을 정직하게 믿었던 나는 꽤 순진했나 보다.

심쿵했던 기억이 또 하나 있다. 쉬는 시간에 잠깐 졸다가, 일어났는데 무릎에 신문지로 둘둘 싼 장미꽃 한 송이가 누워있었다. “자고 있는 네가 예뻐서 급하게 뛰어가서 사 왔어” 검지로 내 볼을 꾸욱 누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했던 오빠와 사귀지 않았던 사연이 있다. 오빠는 헤어지는 중이었다. 오빠와 오랜 시간을 웃고 울고 했던 언니는 오빠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오빠가 처음으로 웃질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 앞에 찾아와서 블라블라블라. 그렇게 내 것 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나로 귀엽게 삼귀다가, 학원을 관두고 두어 달에 한 번쯤 만나서 시시콜콜 웃고 떠드는 사이로 지냈다. 그러다, 지금 그리고 평생 사귀게 될 오빠랑 만나 결혼식을 두 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덕재오빠에게 손편지가 아닌 청첩장을 건넸다. 포근하게 웃으며 청첩장을 그윽하게 한참을 내려봤던 오빠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축하해. 오빠가 청첩장은 가지고 갈 건데, 결혼식은 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린 이제 우연히 마주치자. 웃으면서 뭐하고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내 동생. 행복하게 잘 살아”

지금까지 우연은 없었다. 그래도 믿는다. 누군가를 눈과 귀와 입과 마음으로 웃기고 사랑하며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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