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물

bgm. 엄마아리랑-손가인

by 맥켈란

살면서 엄마의 눈물을 딱 두 번 본 적 있다. 중풍으로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외할머니 차가운 몸을 수의로 갈아입히는 염을 하는 도중 엄마와 이모들은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눈물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안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살짝 열고 한쪽 눈으로만 봤는데, 엄마가 침대에 한 팔로 얼굴을 개고 비스듬히 누워 울고 있었다. 영문도 이유는 몰랐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시렸다. 조용히 문을 닫은 그 날 이후, 비밀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울던 밤을 셀 수 없겠지만, 우리 앞에서 그렁그렁한 적이 없던 엄마는 강했다. 스무 살 때부터 사업을 했다는 엄마의 청춘은 아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참 싫어한다. 아름다우니까 청춘이어야지, 왜 청춘은 아파야 할까. 돈을 모아 형제자매를 먹이고 입혔고, 종갓집 장남인 아빠를 만나 기울어가는 시댁 살림을 버티게 했다. 안간힘을 다해 고모 삼촌들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고 대학까지 보내 놨는데, 시누이들은 참 얄밉게 굴었다. 괘심하고 재수없어 화병이 난 엄마는 뱃속에 있는 나와 오빠와 안 가겠다는 아빠를 이끌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자식은 엄마의 전부였다. 평생을 ‘돈돈돈’ 거리며 낮밤 없이 일하며 아끼고 아꼈지만 자식이 원하는 거라면 간이라도 팔 기세였다. 오빠는 나이키 조던 시리즈를 모았고, 나는 전교생 최초로 가로본능 휴대폰을 손에 쥐는 영광을 안았다. 매일 아침은 수라상이었다.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엄마는 고슬고슬한 새 밥을 지었고 삼겹살을 굽거나 갈치를 티겼다. 고소한 밥 냄새를 맡으며 부스스 일어났던 나는 참 행복했다. 엄마는 오빠와 나를 열싸(열열이 사랑)했다.

그러지 말지. 그렇게 살아온 엄마가 지금은 참 밉다. 너무나도 밉다. 자식 바라기로 살아온 엄마는 독립을 한 자식들인데도 여전히 바라기다. 본인의 삶은 없다. 엄마는 엄마를 위해서 뭘 해봤을까.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친정집에 들렀는데, 냉장고를 보고 이마를 짚었다. 늘 진수성찬이 차려졌던 우리 집인데 김치랑 풀 데기뿐이었다. 엄마 아테 화를 냈다. “아빠는! 무슨 죄야!” 그 후로 엄마 아테 반찬 해달라는 말을 꺼낸 본 적이 없다. 그게 또 엄마는 서운하단다.

자식들 흘리고 남긴 거 주워 먹으며 스스로 자존 감 없이 살아온 엄마의 사랑은 집착이 됐다. 자신의 계획대로 오빠와 내가 살아가길 바란다. 장손인 오빠는 무조건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하고, 막내딸은 드라마에 나올 법한 훌륭한 남자를 만나 애 하나만 낳고 알콩달콩 살길 바라셨다. 드라마틱한 오빠를 만나긴 했지만, 애 하나는 없고 없을 거다. 엄마 손에 이끌려 여성난임병원에 처음 갔고 시험관 시술 부작용으로 복수가 찼다. 원래 무디고 무뎌서 병원에 가질 않는데 배가 터질 거 같아서 오빠가 없던 밤에 슬리퍼를 신고 택시를 타고 혼자 응급실에 갔다.

“복수가 거의 폐까지 차올라 죽을 뻔했어요” 저세상 갈 뻔한 기막힌 상황을 마주하자 웃음이 삐져나오더니 왈칵 쏟았다. 오빠와 엄마와 아빠가 달려왔다. 세상 착한 우리 오빠가 병실로 들어온 장모님을 보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눈물을 삼켰다. “다시는 아이 이야기 꺼내지도 마세요! 우리 영영 숨어버릴 거예요!” 엄마도 아빠도 나도 순간 얼음이 됐고, 아빠는 화를 내며 “가자! 가!” 엄마 팔을 당기며 집으로 가셨다. 가슴이 콩쾅콩쾅 뛰었지만
, 너무나도 시원한 사이다였다.

나만 있으면 된다는 오빠를 다독여 시험관 시술을 했지만 두 번의 유산. 그리고 나는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정이 참 많이도 쌓인 담당 주치의와 작별을 했다. 엄마는 아직도 외손주를 바란다. 이유는 정말 너무나도 조선보다 한참 전인 고려시대 막장이어서, 창피해서 글에선 밝히진 않겠다. 엄마가 미워서 엄마 전화를 받지 않고 카톡도 읽씹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엄마와 아빠만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어렸을 적에는 엄마가 짱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착 여왕과 지금까지 살아온 한량 아빠가 더 최고다. “아빠, 나는 단 하루도...”라고 말하면 아빠는 말없이 웃는다.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나중에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아라!” 엄마가 주특기로 말하는 이 말이 참 슬프다. 엄마가 지금까지 주신 사랑도 넘쳐서 버거우니, 지금까지 벌어 놓은 돈 엄마 아빠 위해 다 쓰고 부동산 다 팔아서 세계여행 가시고 거지되면 자식들이 먹여 살리겠다고! 해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한다. 돈이 있어야 자식들이 자신의 뜻대로 산다는 가치관이 참 안쓰럽고 속상하다. 나는 여행을 하며 사는데 엄마는 불행을 하며 산다. 내 마음이라도 단단해졌으니 다행인 걸까. 늘 안쓰러운 엄마를 과감히 차단할 만큼 용기를 낼 수 있고 작은 욕심도 던져 버릴 수 있는 재주를 가져 홀가분해졌다. 다음 세대에겐 창피하지 않는 나로 자라고 싶고 윗 세대에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리고 엄마. 숨어서 눈물 훔치지 말고 앞에서 울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덕재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