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bgm-아무 노래. 지코

by 맥켈란

설날

까치까치 설날은 어제 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섣달 그믐날을 뜻하는 오늘은 까치들의 설날이다.
구정이면, 충남 당진 할머니 댁에 갔었던 어린 시절엔 까치는 설날에만 시골에 찾아오는 손님인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비둘기 보고는 도망가는데 까치는 반갑다.

옷 소매로 코를 훔쳤던 코흘리개 초딩 시절. 그러니까 1990년 초중반은 스마트폰은커녕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잘못된 경로입니다’ 네비 아가씨도 없었다. 동아 전과보단 조금은 날씬했던 대한민국 지도책과 이정표를 손가락으로 짚어보고 눈으로 째려보며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하. 일제시절 피난길은 얼마나 힘들었으랴.

우리 집 생애 첫 차 르망 앞자리엔 아빠 엄마가 뒷자리는 작은 품 안에 만화책과 과자봉다리를 잔뜩 안은 오빠와 내가 폴짝 뛰어올랐다. 당시 아빠의 철학은 확고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아니요. 아닙니다.


새벽 네시. 잠옷 차림으로 벌러덩 자고 있던 자식들을 어르고 달래고 깨워 파카만 대충 입히고 아빠의 고향으로 달렸다. 아빠는 늘 지도를 보고 국도를 밟아갔다. 아스팔트가 아닌 1차선 흙길이 들어서고 까까머리 논밭이 보일 때면 길은 꽉. 막혔다.

어느새 만화책을 다 보고 초코파이 오에스도 뽀짝 내버린 오빠와 난 근질근질한 몸을 여기저기 부비며 “아~언제 나갸고오오오오오”라며 툴툴 짜증을 부렸다. 미운 오리 새끼들. 속도를 내지 못하는 자동차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가 쉬고 있으면 창문으로 고개를 쏙 내민 엄마가 탄 르망이 보였다. 휴게실 화장실도 없었던 그 시절. 라떼는 말이야 수풀에서 쉬야를 했었지. 아무튼 1박 2일에 거쳐 할머니 품 안에 안겨 눈물 찔끔 흘렸던 그날들이었다. 이후 2001년 12월 말에 완공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할머니를 뵈러 2시간 만에 훨훨 날아갔던 그때의 “오아!”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빠는 6남매 중 장남이다. 삼촌 둘 고모 셋. 종갓집이라 제사와 차례는 늘 전통으로 차렸고 맏며느리 엄마는 말이 없이 부쳤다. 출가외인 고모들은 설날 지난 하루에나 가끔 볼 수 있었고 작은 아빠와 막내 삼촌과는 늘 구정을 함께 보냈다. 내가 선머슴으로 자란 이유도 어린 시절 영향이 크다. 작은 아빠 엄마가 낳은 자식들도 형제라 나도 형제처럼 놀며 자랐다. 대나무를 잘라 화살을 만들고 막대기로 칼 싸움을 했다. 구슬 따먹기 딱지치기 팽이치기도 하고 짚불놀이도 했다.

흠. 한 번은 진짜 크~으~닌 할 뻔한 적이 있는데. 인겸 오빠가 성냥을 가져와 논에 있는 짚더미에 불을 붙인 성냥개비를 던져서 큰 불이 났다. 그 좁은 시골길이 119 소방차 두대가 들어와 화가 난 불길을 잡았고 꼬맹이 4 총사는 시골 앞마당에서 팬티 차림으로 엎드려뻗쳐했다. 반성은 개뿔이었나 보다. 벌서기가 끝나자마자 사랑방에 우르르 들어가 이불을 깔고 불을 끄고 신나게 베개싸움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손녀가 귀했던 김씨네 어른들은 아들처럼 놀지만 딸인 나를 무척이나 예뻐했다. 삼촌은 나를 목에 올려 태우고 산으로 가서 작은 소나무를 베어와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줬다. “나는 태조 이성계다”라며 오빠들과 칼싸움을 부리면 할머니가 조용히 내게 다가와 구석으로 끌고 가서 속삭였다. “아가야~ 여자는 조신하게 얌전하게 놀아야지” 웃으며 타이르셨던 할머니는 곧 100 세지만 아직도 자신의 옷차림을 단정하게 차려입으시고 두 손을 모으고 앉아계신다. 그렇게 조선시대 꽃마님처럼 조신했던 할머니가 나를 보고 빽! 소리를 지른 적이 한 번 있다. 여름방학 때마다 맞벌이 부모님께선 우리 남매를 할머니 댁에 맡기셨는데 사촌오빠 동생도 함께 왔다.

우리는 축구공을 들고 근처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머리카락까지 땀과 흙 범벅이 되어서 돌아왔다. 오빠들과 사촌동생은 옷을 다 벗고 마당에 있던 커다란 고무대야에 들어가 물놀이를 했다. 나도 따라서 웃통을 까고 바지를 벗고 뛰어들어갔는데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떽!” 하시더니 옷을 입히셨다. 가슴이 없었던 당시에는 무지무지 억울했다. 설날 아침에는 다 함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 한 그릇을 비우고 한 살 더 먹었다.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더 먹는다는 윗 분들의 우스갯소리. 어떨 때 보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생각만큼 순진한 줄 안다.

조상님께 성묘를 하고 동네 어르신들(당숙. 5촌. 8촌) 집에 인사를 다녀오면 조용했던 엄마는 아빠의 옆구리를 찌르셨다. 아빠와 내가 동네를 돌고 있는 사이에 엄마는 자동차 트렁크에 우리 짐을 다 챙겨 넣었다며 아빠의 소매를 끌어 당겼다. “알았어..아..알았어..”라는 아빠는 밥솥처럼 뜸을 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친정에 오고 있는 고모들을 기다렸던 큰 오빠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엔 저게 뭐라고 집에 가는 내내 말다툼을 할까, 싶었는데 지금은 엄마도 아빠도 다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됐다.

이공이공 설날이다. 엄마가 차례와 제사를 물려받고, 자식들이 결혼하고 나서는 대가족이 모일 일은 결혼식이나 장례식뿐이다. 우리 시댁은 1월 1일 신정 점심 외식으로 설을 지내기 때문에 오늘은 친정엘 간다. 엄마 아빠 드릴 세뱃돈을 준비하고, 우리 조카들 태양과 우주에게 안겨 줄 선물들이 한 보따리다. 아빠에게 카톡으로 얼음과 토닉워터를 사놓으라고 부탁드렸다. 위스키를 가져가서 하이볼을 마시며 하이 한 저세상 텐션으로 놀아볼 속셈이다. 뭐. 엄마는 또 이그이그~ 언제 철들래 하면서 하이볼을 홀짝홀짝 마시겠지. 난 오빠들과 새언니 태양이와 아무 노래 챌린지를 벌 일 생각이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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