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매일 싸웁니다

좋은 엄마 좋은 딸

by 맥켈란



‘미역국 챙겨 먹어라. 가족 단체톡에서 나가지 말아라’


엄마가 보낸 카톡에 눈을 떴다. 오늘이 내 음력 생일인가 보다. 우리는 또 냉전 중이다. 엄마는 아직도 쓰고 있고 난 진작에 지운 일인데, 근황을 묻는 딸에게 쓰고 있던 연필을 던졌다.


뾰족했는지 나답지 못했다. 그냥 ’ 무소식이 희소식‘ 소신을 지킬 것을. “엄마는 여전하네. 건강 잘 챙겨” 말을 끝으로 가족단체톡에서도 나와버렸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성질이다.


난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이란다.


우리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결혼 전부터 오빠와 난 딩크로 우리 삶을 살겠다고 (엄마 빼고) 양가 부모님께 허락을(받을 일은 아니지만) 받고 독립했다.


결혼 5년 차쯤였을까. 엄마의 설득은 지치고 지겨웠다. 그쯤 태어난 첫 조카 태양이가 얼마나 귀하고 예뻤던지, 내가 미쳤었지 엄마 손을 잡고 시험관 여성병원에 갔다.


다낭성난소증후군과 저체중. 자연임신은 힘들고 시험관을 해야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능성’이라는 주치의 말에 엄마는 한 줄기 빛을 본 것 마냥 기뻐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소원 한번 들어드리자. 가치관도 바뀔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아. 괜히 바꿨어 내 신조. 결과는 엉망진창이었다.


과배란 주사 부작용으로 복수가 폐 위까지 찰 뻔해서 저세상 갈 뻔했고, 1차 임신 성공했으나 7주 차 태아 심장이 멈췄다. 남은 냉동난자로 2차 시도. 심장소리는 우렁찼지만 12주 차 초음파검사 때 돌연변이로 진단. 심장이 점점 커져서 태어나도 3일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을 아이.


1차 때 태명은 열무 아들. 2차 때는 하루 딸. 15주 된 하루를 유도분만으로 낳았고 차가운 수술실에서 꺽꺽 울었다. 오빠는 등을 지고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퉁퉁 부은 눈으로 병실에서 뻗어 있을 때 찾아와 엄마의 한 마디는 뼈를 때렸다.


“괜찮아. 딸. 다시 도전하면 돼”


화가 없는 박서방도 빡이 쳤는지 서둘러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집으로 보냈고, 생각 없이 살아온 나는 자신에게 묻고 답을 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다행히도. 다시 나의 삶을 살게 됐다.

둘째 하루를 보내고 오빠가 수술실에서 물었다. “갑자기 아기를 갖고 싶었던 이유가 뭐야? 우리 둘만 행복하기로 했잖아” “몰라. 모르겠어. 미쳤었나 봐 “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우리 부부는 무적파워가 됐다.


내 목소리 들으면 울음보가 터지실까 봐, 한참 후 연락 오신 시어머니 한 마디에 사이다 마셨다. “친정엄마가 다시 한번 시험관 하라고 하면 내 막둥이 아들 환불해 간다고 전하거라 “ 위로도 참 위트 있게 하시는 우리 어머니.


엄마도 짠하다. 얼마나 모질게 강하게 살아왔으면 피붙이에게 “넌 다시 할 수 있어”라는 말을 과감 없이 뱉을 수 있는지. 엄마 삶은 어땠을까? 근데요. 엄마. 제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 줄 알고 나는 아직도 엄마가 젊은 줄 안다. 그래서 인가보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할 말을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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