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불량한량
나는 한량이다.
태생은 하고 싶은 건 기필코 해야 하는 고집쟁이였다. 꿈을 이뤘고 대상포진에 걸릴 만큼 감당할 수 없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십 대 청춘 참 찬란도 했지. 인터뷰하고 싶은 공인이 있으면 쉽게 만날 수 있었고 대우도 섭섭지 않았다. 좋은 선배들 만나 귀여움을 받았고(물론 악마도 있다) 후배들과도 격 없이 놀았다.
첫사랑과 헤어졌고 남편을 만난 지 5년 후 28살 어린 신부가 됐다. 공휴일도 없었던 회사와 정말 아름다운 이별(대표님 우리 결혼식장에서 울었다)을 했고. 이제 결혼 12주년 차.
백수 체질이 됐다.
한결같고 성실한 남편은 여행을 다니며 아직 모르는 세상을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꾸 베트남이나 태국 가서 한달살이 하라고… 왜 그렇게 보내려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부지런히 도 다녔다. 오빠와 친구와 또 나 홀로. 아직도 지구에는 신비한 곳들이 넘쳐나겠지만 됐다. 비행기 타는 게 이제 많이 버겁다. 집 떠나면 개고생.
주부인데 딩크다.
요리도 너무 귀찮아해 본 적 세 손가락에 꼽고, 청소는 즐겁다. 내 공간이 항상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걸 바라서 미니멀 하우스다. 뭐가 없는데 자꾸 없애려 한다. 다행히 이 부분은 오빠와 결이 맞는다. 식탁도 없고 냉장고보다 와인셀러가 더 크다. 식기류도 찻장 한 칸에만 있어 4인 이상 우리 집 출입 불가. 아! 와인잔은 많다. 아! 손님용 침구도 있긴 하다!
매일 술 마시는 운동하는 마흔.
직장 다닐 때부터 애주가다. 새내기 때 맥주 500도 못 마셨던 꼬마가 쏘맥을 말더니 소주로, 사케, 고량주, 와인을 거쳐 코냑과 버번, 위스키까지 다 끝장냈다. 왕왕. 부디 약까진 손대지 말자. 건강한 도라이.
술을 마시려고 운동을 한다. 나 자신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니까. 오빠와 함께 일주일에 3번 꼭 피티를 받는다. 술도 배신하지 않지만 땀도 의리 있더라. 매일 마시지만 그만큼 유산소 근력 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근력은 늘었고 체지방은 점점 줄었다. 물론 식단도 중요하다. 안주는 건강한 단백질. 저탄무당.
백수가 되면 심심할 줄 알았는데 더 바쁘게 신나게 살고 있다. 더 글로리 이후로 넷플릭스에 볼 게 없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오빠랑 놀러 갈 계획도 잡고,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찾아간다.(땡볕 잠수 타기 전까지) 조만간 여름을 마무리? 하는 서머 홈파티도 열 예정이다. (4인 이상 불가)
오늘은 강남역에서 점심약속이 있다.
오박사와 미스터 황. 낮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