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정 Aug 12. 2024

너의 '일'이 하찮지 않다고 믿어?

매일 도전하고 매일 실패할지라도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엄마, 오늘도 나가?

"응, 일 하러 가야지."

15인치 노트북에 책 서너 권, 두툼한 다이어리와 노트 두세 권, 충전기, 텀블러, 필통까지 한 보따리 챙겨 매일 카페로 나선다.

도착하면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책부터 읽는다. 번뜩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 위해 노트를 펼치면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된다.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기획하는 것이다. 가끔 글감을 메모하고 소제목들을 뽑기도 한다. 다섯 번째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써 놓은 글을 열어보기도 하고, 새 글을 쓰기도 한다.

하루 정해진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고할 상사도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이것저것 펼쳐보며 새로 시작하거나 점검하거나 세부 사항을 기입하며 언젠가 열릴 모임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폐기하는 모임도 많고,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짓지 않은 글도 수두룩하다.

이걸 '일'이라고 할 수 있나?

문득 회의감이 밀려오는 까닭은 시작과 마무리가 불분명한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올여름은 매일 '일'에 대해 질문하는 일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반면 이런 '일'도 있다. 정식으로 의뢰받은 강의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고, 강의 자료를 만드는 일.

강의를 하고 오는 일. 혹은 출간될 책이 있고, 마감 기한에 맞춰 원고를 쓰고 퇴고하는 일.

통장에 공식적인 기록이 남는 일이다. 그래서 이 일을 더 열심히 하는가 냉정하게 물어본다면 아니요, 다.

나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일'을 하는 순간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일이고, 가슴 뛰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강의를 하고 돈을 벌었을 때의 감격. 그 뒤에 딸려오는 어마어마한 책임감과 부담감. 다른 종류의 일을, 무겁게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강의가 뚝, 끊겼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인세 받아본지도 오래다.

한 달에 한두 번 겨우 그치지 않고 강의 의뢰가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요즘이다.

딸은 요즘도 날마다 자기 전에 묻는다.

"내일도 나가?"

때로 '아니, 요즘은 별로 일이 없어서...'라는 말을 삼키며

"응, 일 하러 가야지." 한다.


요가 선생님의 말 한마디 "반복하는 건 하찮지 않습니다."


딸의 질문이 시작된 때를 떠올려 본다.

강의하러 가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근데 왜 매일 일을 하러 나가? 심지어 주말에도 카페에 나가 일했잖아?"

8개월 여 직장을 다니다 잠시 쉬었을 때,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던 딸은 엄마의 '일'이 새삼 의아했던 모양이다. 매일 식탁에 앉아 읽고 쓰더니 어느 날 책을 내고, 작가가 된 엄마도 마냥 신기하게 봤으니까.

딸의 눈에 비치는 엄마의 '일'이란 어땠을까.

요리 + 여가인지 일인지 경계가 모호한 빡센 독서+ 스쿼트만큼 힘겨워 보이는 몇 시간의 의자 자세 + 수십 가지의 자잘한 집안 '일' + 가끔 모임이나 강의.

매일 새벽 한 시가 가까운 시간, 자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다 눈이 마주칠 때면 유일하게 "잘 자"라고 인사해 주던 딸.

이러한 무한반복의 일상은 과연, 인생에서 눈에 띄게 나아지는 실력이나 성과가 될 수 있을까?


요가 수련을 마치고 마무리하는 시간 요가 선생님이 그러셨다.

"반복하는 건 하찮지 않습니다."

동작이 잘 되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거라고,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을 때도 그저 다시 반복하는 길 밖에 없다고. 그러면서 조금씩 확장되는 걸 경험하셨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던 바고, 그렇게 노력해 왔던 일이라 새삼 새로울 것 없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오늘도 짐을 싸들고 일찍 문을 여는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질문한다.

너는 오늘도 '일'을 잘하고 있냐고.

요 며칠은 요리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토마토 스튜와 스튜를 활용해 카레를 끝내주게 만들어 놓았고, 오이, 양파, 토마토, 참외로 샐러드를 한통 가득 담아두었다. 유튜브를 보고 닭가슴살 얹은 비빔국수를 만들어 보았고, 소스도 넉넉히 쟁여 두었다. 서평집에서 소개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쌓아놓았고, 독서 모임도 세 번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매거진 연재를 시작한다. [질문하는 월요일] 우선 한 달만 해보기로 한다. 매일 결심하고 매일 실패하는 일들이 수두룩한 요즘, 무언가 시작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하는 일을 모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쓰고 보니 진짜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매번 다짐하고 도전하지만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다는 것. 맷집은 그 과정에서 생긴다. 이런 사유 또한 매일 결심하고 매일 실패하며 생긴 축적의 결과다. 그러니 오늘도 하자. '일'이라는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