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죠? vs 어떻게 지내시나요?
무심코 주고받던 안부 인사가 어느 날 생경하게 마음에 와 박혔다.
“잘 지내시죠?”라는 안부 인사에 “네, 그럼요.”라고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더랬다.
'내가 잘 지냈던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이 지내고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던 것 같다. 혹은 무거운 고민들로 하루하루 그냥저냥, 꾸역꾸역 살고 있었다는 걸 절감했을 수도 있겠다. 아, 안부 인사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네, 습관적으로 쓰던 말을 되짚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안부 인사는 별탈 없이 잘 지냈기를 바라는 상대방의 소망이 담긴 말일 게다. 그러니 '네, 그럼요, 그럭저럭요' 정도로 대답하는 게 최선일 터. '아니요, 글쎄요.'라고 선뜻 말하긴 어렵다. 잘 지내지 못하는 내 사정을 상대방이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절친인 친구가 묻는다면 또 모를까.
"아니! 나 못 지내고 있어, 흐엉!"
답을 정해 놓고 하는 질문에 입을 다물고 싶은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나. 그러니 진짜 안부가 궁금하거나 걱정하는 마음이라면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됐다.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을 ‘안부’라 한다면 이미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긴 하다. 당신을 생각했고, 갑자기 궁금해졌고, 오랜만에 말을 걸고 싶어 졌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문자로든, 전화로든 한 단계 더 마음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틀림없다. 그러니 흔히 쓰는 이 말도 조금은 세심하게 쓰면 좋지 않을까? 부탁할 게 있거나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잘 지내시나요? 잘 지내고 있니? 어떻게 지내셔요? 별일은 없으시고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나요?...."
상대방이 자신의 안부를 전할 기회를 주는 인사. 오랜만에 연결된 끈을 살며시 끌어당기는 마음. 당신이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네는 인사. 불쑥 말고 조심스레 다가가는 태도. 이런 느낌을 주는 안부 인사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울까? 그러니 인사를 건네기 전에 잠시 내 안부부터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소원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다시 온기를 지피는 심정으로. 내가 전할 용건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여건은 어떤지 살피는 마음으로.
SNS가 지배하는 일상. 안부 인사가 담긴 문자를 주고받진 않아도 서로의 일상을 훤히 들여다보며 잘 지내고 있으리라 추측하곤 한다. 근사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이 그날 하루의 안부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사진 너머의 숨겨진 마음에 다정한 안부를 물어주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감동받고 위로받았던 나는 답글 한 줄에도, 안부 인사 한 줄에도, 수화기 너머로 전송되는 말 한마디에도 성의를 담고 싶다.
당신은 어떤가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덧: 이 글을 쓰고 10시간이 지난 뒤 달라진 안부
한 시간 전, 아랫집 남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단다. 이사 후 문제가 끊이지 않아 노심초사할 때가 많았는데,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 터진 것이다. 우리집 천장 누수 보다 더 난감하고 번거롭고 마음 무거운 일이 남편이 퇴사하자마자 우리 앞에 쿵.
그럼에도, 저는 잘 지내볼까 합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요, 한숨 쉰다고 물이 멈추는 건 아니니까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보험도 확인하고, 경험한 분들 조언도 듣고요.
그리고 또 10시간이 지난 지금의 안부. 공사 중이니 곧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고.... 믿는다.
(사진 속 아이에게도 인사를 "올 여름 어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