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것들
몸을 쓰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부터 밥을 짓고, 살림을 하는데 내 몸을 쓴다. 나를 움직여 살게 하는 몸. 하루종일, 잠잘 때도 쉴 새 없이 몸을 쓴다.
마음(정신/애)을 쓰다: 돌봐야 하는 존재들. 얼마나 많은지? 자식, 배우자, 부모, 이웃, 친구, 반려동물이나 식물....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마음과 정신을 쓰고 갖은 애를 쓰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마음이란 건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내 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고, 가장 마음 쓰는 일은 거의 바깥을 향하고 있기 일쑤다. 그렇게 마음과 정신을 하루종일 쓰며 산다.
시간을 쓰다 : 평생 쓰는 것 중 하나. 쓴다는 의식 없이 펑펑 쓰는 것 중의 하나. 가끔 아주 많은 시간이 뭉텅 사라지고 난 뒤에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거나 놓쳐버렸는지 알게 되는. 매일 주어지는 24시간 중에 온전한 나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따로 떼어내어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위한 것에 쓰는 시간. 난 충분히 쓰고 있을까?
돈을 쓰다 : 삶의 커다란 숙제. 사는 동안 굽이굽이 용을 쓰며 넘어가야 하는 산. 때로 버겁고, 슬프고, 지긋지긋한. 그럼에도 좋아하는, 늘 갈망하는 것. 잘못 쓰면 망치게 될 게 뻔한 이 돈이라는 건 삶의 목표와 수단에 두루 얽혀 있는 것이므로 정말 잘 써야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며, 어떻게 쓰고 있나?
신경을 쓰다 : 이 말은 하루 뒤쯤 추가한 말이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메모했던 말. 아아,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쓴 건 이거였구나. 그날은 하루종이 아랫집 천장 누수로 시작된 공사와 비용 처리, 부당한 청구서와 보험 처리의 불합리한 관행 등에 대해 하루종일 신경을 쓰고 속을 끓였더랬다. 어디서부터 개선을 해야 되는 걸까 뒤척이다 떠오른 이 말. 나는 정말 신경 쓰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고, 내가 한 말에 오해할까 신경 쓰고, 내가 쓴 글의 반응이 어떨까 신경 쓰고, 내 행동이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고, 그들의 모임인데 상관없는 내가 신경 쓰고, 내 모임인데 관심 없을 그들을 신경 쓰고, 아직 당도하지 않은 슬픔과 불행을 신경 쓰고..... 아, 이건 좀 안 쓰고 싶은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