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만남'에 대한 사유가 깊어진다. 이런저런 모임을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의 폭을 넓히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부러운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뭐라도 시작하거나 따라 해보려고 애쓰며 살았다.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고 괜찮아지는 나를 기대하며 살게 되었다.
관계를 맺어나가는 동안 가치관이 다르거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오래 고민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멀어지는 관계도 생겼다. 그냥 적당히 만나는 사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깊은 대화로 나아가지지 않는 모임, 이해관계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자리, 내가 가만히 있으면 이어지지 않는 관계, 어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따끔거려 만나고 싶다가도 주춤하게 되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폭이 좁아진다. 마음 부대끼는 일은 줄었지만 가끔은 외롭고, 이래도 되나 고민하곤 한다. 그럴수록 관계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과 의혹을 해소한다. 약속을 정하고, 만나기 전까지 중요한 작업을 한다. 내내 그 사람을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준비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흡족하게 풀어놓을 수 있도록 잘 들어주고 와야지, 다짐한다. 말 많은 내 입을 단속 잘하라고여러 번나를 다잡는다.
"나랑 무슨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궁금한 거, 도움이 필요한 지점, 질문거리 있으면 미리 알려줄래요? 잘 준비해서 갈게요."
"우리 이번에 뭐 할까? 이 모임의 제목을 붙여보자!"
"이번 모임은 우리에게 뭐야? 정말 좋았던 우리 모임. 몇 줄 소감은 남겨두자고!"
어떤 만남이든 질문을 준비해서 가려고 노력한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인생의 한 날, 몇 시간일지라도 나에게 할애해 주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온마음 다해 표현한다. '당신이 괜찮은지, 당신이 진심 바라는 게 무엇인지, 당신을 슬프게 하는 일'이 뭔지 중요한 질문을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몸을 기울이고, 오래 눈을 맞춘다.
헤어지는 길, 가만히 내 마음도 살핀다. 어땠어? 좋았어? 언제 또 만날까? 다음엔 뭐 할까?
안아주거나 등을 쓸어주거나 손을 활짝 펴서 흔들어주며 간절히 기원한다.
나의 '손바닥마저 다정'(정세랑, 피프티피플)하게 느끼기를. 돌아가는 길, 헛헛함 아닌 충만함이 곁에 맴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