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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an 04. 2016

내 삶의 깊이를 내리고, 삶의 결을 다듬는 일

오늘의 책 속 한 줄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를 읽는다.


권태롭다는 것은 삶이 그 의미의 줄기를 얻지 못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싫증이 있을 뿐이며, 새로운 것의 번쩍거리는 빛으로 시선의 깊이를 대신하려는 나태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

p192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하나하나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

p212




긴 호흡을 가지고 읽게 되는 책이다.

설익고 어설픈 글들을 쓴 것들이 부끄럽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

둘러보는 풍경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깊이 성찰하고 길어올리는 언어들이

한겨울 칼바람에 쨍 갈라질듯한 서늘하고 날카로운 대기를 마주대하는 느낌이다.


생각할수록 기막히고, 여전히 가슴을 후벼파는 과거의 기억들을 낱낱들추어내 기록하고,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차분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글로 일침을 가하는 글 속에 일관되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에 대한 사유 속에 말할 수 없이 따스한 온기가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챕터 한 챕터 읽을 때마다 긴 한숨을 따라 내쉬면서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타인의 삶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

내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사물 하나도 오래 들여다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런 것들이 하나 둘 모여, 내 삶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결을 아름답게 하는 일임을 생각하는 이 시간,

후려치듯 정신까지 얼얼하게 만드는 칼같은 겨울 바람이 그립다.

평창동 키미아트

「삶에서  오는 숨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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