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출국 전날까지의 이야기

포르투갈로 떠날래요

by 장수연

여는 말

본 여행기의 일부분은 누군가, 혹은 무엇의 정체성(identity)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의 동기

:할 수 있는 만큼 한국에서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유럽에 가고 싶었다.


2023년 말 즘에 나는 대학생으로서 내가 택할 수 있는 근미래 계획 두 가지를 세웠다.

1. 졸업 전시를 하고 교환을 가고 마지막 학기 다니기

2. 교환학생을 가고 휴학을 한 후 졸업 전시하기

개인 사정으로 인해 2번이 더 낫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2024년 1학기 때 타국의 어느 미술대학으로 24 - 2학기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1차 심사를 통과해서 기뻤지만, 2차 심사에서 상대교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았다. 나는 한동안 외국에서 학생 신분으로 오랫동안 체류할 좋은 기회가 영영 없어졌다는 사실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tempImageRoqXsV.heic 다시 봐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떨어진 이유는 성적이 좋지 않고, 포트폴리오가 별로고, 지원서를 제대로 못 썼고, 그 나라 언어를 하지 못해서야….

1차 심사에서 붙으면 2차 심사는 웬만하면 안 떨어진다는데, 최종 탈락하다니….'


많은 시간 동안 나는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며 혼자서 제 속을 갉아 먹었다. 한편으로는 취업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엔 아까워서, 뭐라도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을 만들어 인턴을 몇 번 지원했다. 그렇지만 합격 소식은 듣지 못했다.


지난 1학기 종강을 기점으로 남은 정규 학기를 모두 마치고, 학사 학위를 얻기 위해선 오직 봄학기부터 시작할 수 있는 1년 단위 졸업 전시 수업만이 남아 있었다. 교환학생에 붙었다 할지언정 어차피 2학기 때 한국에서 학교는 다니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진작 마음먹었던 휴학을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신청했다. 그리고 지금 취업 준비를 재개할 타이밍이 여러모로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고 싶었던 유럽에 여행이라도 가기로 했다.


기간 정하기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왕 갔다 올 거면 좀 오래 다녀오고 싶었다. 그리고 11월 막바지에 시작해서 12월 초에 끝나는 자교 전공 졸업 전시도 보고 싶어서, 귀국은 졸전이 끝나는 날 전에 해야 한다는 제약을 두었다.

원래는 총기간을 한 달로 잡고 싶었다. 그래서 11월 1일에 출국해서 달의 막바지에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면 아르바이트 마지막 근무날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게 되는 거라, 출국일을 휴식하고 채비할 시간도 없이 넘 밭게 잡았나 싶었다. 그래서 여행의 시작일을 조금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예산을 계산해보니 이 정도 여비를 가지고 한 달 동안 다녀오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여행 기간을 3주로 줄였다.

tempImage1cHAqa.heic 출국 전 최종 여행 일정(현지 기준)

여행지 정하기

여행지를 정하는 방법과 이유는 많다.

나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을 고려했다(1번 조건이 해결되면 바로 2번 조건을 고민한 게 아니라, 다섯 가지 조건을 캐치볼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했다):


① 국가 정하기

취향과 흥미를 고려했을 때, 이탈리아, 튀르키예, 포르투갈, 스페인, 이 네 나라가 끌렸다. 처음에는 이 네 가지의 나라 중 두세 곳을 골라 다녀올지 생각했다. 근데 지난 스페인 여행에서 느낀 바로, 그냥 한 나라에 오랫동안 있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①-1. 일단 튀르키예를 뺐다. 튀르키예는 아름다운 도시이고, 나는 13년 전에 아빠와 튀르키예를 여행한 적이 있다. 거기에 가면 고양이도 많이 보고, 다양하게 생긴 맛있는 케밥을 먹고, 멋진 자연유산을 볼 수 있단 걸 안다. 그치만 안 가본 나라를 가고 싶고, 언어 문제도 있어서 제외했다.

①-2. 그리고 이탈리아…는 물가가 비쌀 것 같아서 뺐다(그치만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

①-3. 다음은 스페인. 예전에 대학 입시가 끝나고 열흘 동안 엄마와 스페인 중부~북부를 여행하며 주요 도시를 띄엄띄엄 빠르게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이 서유럽의 커다란 나라는 여행하기 멋진 곳이지만, 같은 나라에 다시 가자니 이왕이면 안 가본 곳들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관광지로 유명한 남부 도시(말라가, 세비야 등)의 명소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봤지만 요상하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①-4. 결국 포르투갈이 남았다.


②언어

스페인 여행이 끝난 후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서 저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초급 스페인어 1과 2를 수강했다(그리고 모두 A+를 받았다. 와!)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아니, 꽤 비슷한 포르투갈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생존 영어도 나름 할 줄 아니, 여행 중 할 말은 조금이라도 할 자신이 있었다.


③순례길 아니면 여행

사실 처음에 생각했던 여행의 주요 목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엄마는 산티아고"란 책을 읽었는데, 그때 순례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순례를 택하는 데에 있어서 종교적인 이유가 크기도 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고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비종교인의 입장에선 멋있어 보였다. 길을 끊임없이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내 진로와 인생을 성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내 체력이 그 긴 순례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여자 혼자 순례를 떠나는 걸 유의하라는 공문을 읽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몇 번 듣고 난 뒤에, 순례길을 가는 게 더욱 겁이 났던 것 같다. 이렇게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여행으로 길을 틀었다. 대신 순례길 책을 통해 공부한 루트 정보는 버리지 않고 나중에 여행 계획을 짤 때 참고했다.


④연금술사

예전에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정말 좋았다. 이 책의 원서는 브라질어(포르투갈어)로 쓰였고, 등장인물 중 이름이 ‘파티마’인 여성이 있는데 그 이름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마침, 소설 주인공의 이름 또한 ‘산티아고’였으므로,

‘우선 파티마Fatima가 있는 포르투갈로 가고 그다음에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로 가자!’

고 생각했다.

엄밀히 따지면 주인공 산티아고는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 출신이고, 작중 배경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보다는 중동이나 이집트 쪽이긴 하지만…, 사람은 때때로 비논리적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무슨 소린지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⑤전공 관련 관심사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도시 브랜딩 사례를 주의 깊게 보던 때가 있었다(고등학교 때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도시 브랜딩을 좋아했었다). 작년에 전공 수업을 들으며 포르투갈 도시 포르투Porto의 브랜딩 사례를 검색해 읽어본 기억이 있다. 아줄레주Azulejo라는 국가와 도시의 전통 미술에서 형식과 제재를 가져와, 확장하는 그래픽을 만든 것이 멋졌다. 미디어에서 담지 못한, 일관성 있는 시각 정체성 시스템이 적용된 실제 도시의 모습을 만나보고 싶었다.


루트 정하기

출발은 리스본Lisboa에서 하기로 했다. 책에서 읽었던 순례길의 노선을 참고했다(사실 버스와 기차로 이동하는 순례길 코스일지도…). 도서를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곳을 군데군데 추가했다. 나자레Nazare, 파티마Fatima, 브라가Braga, 그리고 코임브라Coimbra.


비행기표 구하기

스카이스캐너skyscanner카약kayak 웹사이트와 앱을 계속 지켜보면서 적당한 비행기표를 구하려고 했다. 그냥 KISES 항공사 웹사이트에서 예약할까 싶었는데, 우리 학교와 제휴한 국제학생증 발급비 지원 이벤트가 10월 중순부터 시작이였다. 학생증을 발급받고 그 이후에 비행기표를 구매하기에는 일정상 늦은 감이 있었다. 그리고 해당 항공사에는 아무래도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위탁수하물 허용 개수에 관한 메리트를 제공해 주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이미 큰 짐은 기내수하물로 넣어둘 배낭 하나만 들고 가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해당 혜택이 별로 끌리지 않았다.

함튼, 앞의 두 비행기표 사이트를 매일매일 확인했다. 경유가 2회 이상인 비행기표는 타면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질 것 같아서 조건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는 시간이 야밤이면 위험할 것 같아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표도 제외했다. 개인적으로 항공사 중에서 루프트한자나 터키항공을 이용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앞선 조건에 맞지 않아 포기했다.

결국 결정을 미루다가 한 10월 초중순쯤에 대한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냥 왜인지 우리나라 항공을 타는 게 마음도 편할 것 같고, 어머니께서 올 땐 경유를 타더라도 갈 때는 힘드니까 직항을 타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그러기로 했다. 포르투갈은 11월이 비수기라 다행히 비행기 표가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다.


경비

최대한 혼자서 벌어 충당하자는 목표를 잡았다. 8월에 한 번 총예산을 가늠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번 알바비, 남은 두 달 동안 벌 수 있는 알바비, 그리고 외주비를 계산해 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유럽 여행을 갈 최소 경비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달 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신청했고, 운이 좋게도 합격하여 약 두 달 동안 찻집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막내 고모와 어머니께서 주신 용돈 등을 좀 더 합쳐서 경비를 채울 수 있었다.

동시에 여행할 도시의 목록과 일정, 예산과 대략적인 지출 계획이 담긴 엑셀을 만들어 매일매일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약 3주 동안 숙소비는 1박당 약 35,000~45,000원, 교통비를 포함한 하루 생활비는 45~50유로 정도로 잡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tempImagezXb8u0.heic 여기에 여행자 보험이랑 유심을 합치니 총 380만원 정도가 나왔다. 그치만 (그리고 아직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것보다 조금 더 썼을 거로 생각한다.

여행 전에 최대한 많은 일들을 마치고 가기로 했다. 알바, 학교 졸준위 영상 작업, 팀 프로젝트. 그리고 ‘여행을 가면 디자인 생각은 가급적 안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외화 지불용 카드와 환전

나는 ①현금②트래블월렛 카드(visa), ③학생증(mastercard) 그리고 ④국제학생증 겸용 체크카드를 들고 갔다.

은 예전에 여행 갈 때 환전하고 남은 것들이었는데, 그냥 웬만한 결제는 카드로 하려고 마음먹었던 터라 추가로 은행이나 환전소에 가 환전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트래블월렛'이랑 '트래블로그' 둘 중 하나를 만들려고 했다. 이름이 비슷한 두 카드의 기능이 헷갈려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만들자고 다짐했다(후술하겠지만 결국 만든 건 트래블월렛 하나였다). 트래블월렛 카드로 현지에서 환전할 수 있대서, 환율을 수시로 확인하며 언제 환전해야 그나마 저렴하게 할 수 있는지 고심했다. 2024년 10월 말-11월 초는 1유로당 원화가 1,450-1,510원 하던 시기라 환율 그래프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은 혹시나 다른 카드로 외화 결제가 안될까봐 가져갔다.

국제학생증 체크 카드는 하나은행에서 학교랑 제휴하는 이벤트를 통해 19,000원의 발급비를 지원받아 무료로 만들 수 있었다. (사실 국제학생증이 트래블로그 카드인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출국 며칠 전에 다시 확인해 보니 트래블로그가 아닌 비바 체크카드란 걸(!) 깨달았다. 이 사실을 자각했을 때는 출국 며칠 전이라, 지금이라도 은행에 가서 발급받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배낭여행

짐은 배낭과 보조 가방, 그리고 목에 거는 작은 동전지갑, 이 세 가지였다. 주 가방으로 배낭과 캐리어 중에서 무얼 택할지 고민했는데, 캐리어는 도난이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캐리어가 있긴 하지만, 어떤 도둑에게 내 짐을 뺏길 확률을 낮추기 위해 배낭을 들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기동성도 고려했다.

근데 찾아보니 배낭 가격이 예상보다 비쌌다. 아니, 만날 백팩만 들고 다니다 보니 정작 필요한 배낭이 이렇게 비싼 줄 정말 몰랐다....30~40L 가방들을 20만 원대에 판매하고 있는 걸 보니, 지금 빠듯하게 모으고 있는 돈도 모자랄 것 같아 걱정인데 갑자기 큰 지출이 생기는 꼴이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여행 가지 말까 고민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에 아빠가 매고 다니는 48L 등산용 가방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엄마가 알려줬다). 결국 배낭은 아빠 걸 빌렸다. 보조 가방은 따로 구매하지 않고 집 옷걸이에 걸려있던 가방이 튼튼해 보여서 가져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빠 거였다.


여자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괜찮을지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아 주변 사람에게 의견도 구했다. 인터넷에 있는 의견도 참고했는데, 응원하는 분이 많았지만, 걱정하는 의견도 많았다. 듣다 보니, 아무래도 어떤 소속 없이 홀로 타국 땅에 가서 돌아다니는 게 무모한 짓 같아 위축되었다. 열심히 모아둔 돈을 한꺼번에 쓰는 게 겁이 나기도 했다.

생각에 잠기던 나날이 계속될 무렵, 어느 저녁에 나는 엄마에게 딸이 혼자 해외로 여행 떠나려고 하는데 걱정이 안되는지 여쭤보았다. 엄마는 물론 당연히 걱정은 된다고 하셨고, 동시에 그렇지만 나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응원을 들었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멈추고 용기를 얻고 떠나기로 했다.


D-3

출국 사흘 전에 애인이랑 만났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었다.

출국 이틀 전에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을 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창 시절 입시 잡담과 앞으로의 졸전 주제 등을 이야기했다. 여행에 관한 조언도 해주셨는데, 여행한다면 트렌디한 도시도 좋지만, 오래된 유적이 있는 도시를 가보라고 하셨다. 그런 곳들이 남아 있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고 하셨다.

출국 하루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양꼬치를 먹었다.

IMG_0088 3.heic 맛있었다

야무지게 논 후, 다이소에서 마지막으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마저 산 뒤 집에 가 남은 짐을 싸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자레에서 빨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