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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삶 Nov 28. 2021

[영국여행 3화] 영화 '노팅힐' 을 여행하다

직장인, 방황하다 영국으로 오른 길 #3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던 중에

오래 전부터 반복해서 보던 영화 '노팅힐(Notting Hill)'이 떠올랐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주연으로,

영어 공부한다며 나름 수 백번 씩 반복해서 음악 대신

듣고 보고 했던 영화.


영화에 나왔던 장소로 무작정 찾아간다는게,

우리 나라로 치면 흔한 관광지에 사람들은 잘 가지 않는

어딘가 일 수도 있겠지만,


낡은 건물, 시장, 북적거리는,

그런 풍경들이 필름 카메라에 담기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국에서 몇 일간 돌아다녔던 것처럼,

나는 Notting hill gate에서 내려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사진이나 영상을 취미로 시작하고는

여행지에 가면 무작정 걷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버스나 차량보다는 단 몇 정거장이라도 걷고 또 걷는 것이

조금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기회를 조금은 넓혀주리라.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노팅힐에 처음 도착 했을 때의

인상은 '파스텔 컬러' 였다.


알록달록한 건물들 사이로

여기저기 가게에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 들어선 노팅힐의 컬러 가득한 건물들을 지나,

영화 속에서의 풍경은 어딜까 걸어보았는데,

결국 그대로의 모습을 찾기보단

지금 눈 앞의 풍경들을 담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빨간색과 노란색 컬러 가득한 시장의 모습.

진득한 청색과 붉은색, 흰색의 컬러로 가득한 주택가.

여러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길을 건너는 남자.


그저 평범한 동네 일상일 것 같은 모습들.


비록 여행의 경험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국내 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여행지의 풍경들 보다 그 안의 삶의 모습들이 담겼을 때,

어떤 생생함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그렇게 노팅힐을 걷다가,

한 참 길거리 어딘가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다시 낯선 길들을 따라 돌아다니다 보니,

가끔 씩 가게 마다 앞에 서 있는 노인 분들이 눈에 띄였다.


낡은 가게의 간판 앞에,

묵묵히 서서 물건들을 보거나

어딘가에 기대서 길거리를 응시하는 모습이

가게의 주인처럼 보였는데 노팅힐의 풍경과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오후 저녁이 되어갈 쯤,

영국에서 일을 마친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런던의 맛집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Kingly Court의 Flat Iron


런던에 왔으면,

한 번쯤 모두가 들린다는 맛집의 거리에서

늦은 오후 선배와 만나 Flat Iron이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영국에 있는 내내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에와서도 생각해보면,

영국에서의 저녁은 항상 선배가 퇴근쯤 연락이 와서 저녁을 먹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도 그렇고,

나는 보통 해외를 여행 할 때도 카메라만 들고

혼자 떠나는 일이 대부분 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밥을 먹을 일이 많이 없었는데,


어찌보면 맛있는 레스토랑들을 알턱이 없는

나를 위한 선배의 배려가 가득히 느껴졌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Flat  Iron, Menu
Flat Iron, Steak

선배는 컴퓨터공학으로 복수 전공을 하기 전에,

나와 같은 화학 계열의 전공을 하고 있었다.


신입생일 때의 나는

고등학교 동안의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마음 껏 대학생활을 즐기던 때였고,

선배는 조금 더 진중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컴퓨터 과 동아리에서

내가 군대에 가기 전에 나름 나를 컴퓨터를 가르쳐보겠다고

이것저것 가르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나는 군대에 갔고,

내가 알기로 컴퓨터 과 동아리는 학교의 사정으로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선배를 볼 때면,

낡은 컴퓨터들이 먼지 수북히 쌓인 곳에서

거의 다 뜯어져가던 과동아리의 쇼파,

왁자지껄 떠들던 친구들의 모습,

함께 소주와 맥주병들을 마트에서 한아름 사들이고 펜션에 놀러가던 모습들이

떠오르곤 했다.


어린 대학생의 신입 시절 철 없던 나와 달리,

마지막까지 동아리를 신경쓰던 선배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는데,

선배는 어느새 프로그래머로 영국에 있었고,

나는 한국에 있는 작은 외국계의 직원으로 영국에서 만난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저녁을 먹고,

주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근처를 걸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맛집의 거리답게 사람들로 매우 북적였다.


노숙하는 사람의 뒷모습과,

각종 고급 스포츠카가 즐비한 거리를 걸으며,

선배와 이런 저런 영국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와 크게 다를 바가 있을까 하는

씁쓸한 감정도 조금 씩 뒤섞였다.




처음 사진을 취미로 시작했을 때는,

독특한 대상, 눈에 띄는 대상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때가 한 2010년도 말이다.


친 누나와 매형이

결혼하면서 대학생인

나에게 내 선물로 보급형 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할만한

금액을 선물로 줬었다.


당시 나는

6개월간 카메라를 바로 구입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조리개, 셔터속도, ISO, 카메라 촬영 기법, 렌즈의 종류, 카메라 Body 종류 등을

이론으로라도 모두 공부한 뒤에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6개월 뒤 선택한 카메라가

Sony 알파 650 이다.


당시, 주위에 카메라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선택하지 않는 카메라였겠지만,

이론만 공부해보더라도 브랜드나 카메라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결국 나같이 부족한 사람은 평생 공부하고,

노력해야하는 거고, 대상이 무엇이던 알아야 힘이 되는 것이리라.


나는 영상 기능도 조금 해보고 싶었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고장나서 쓰지 않는

낡은 렌즈 교환식 필름 Body에 장착할만한 Minolta 렌즈가 집에 있었다.


미놀타 렌즈는 Sony 카메라에 장착할만 했고,

결국 Sony를 선택했다.


어설프게 버튼만 누를줄 알던 나는

국내 여행을 떠나 촬영을 다니기도 하고,

무엇을 찍어야 특별할까를 많이 고민했었다.


허나, 시간이 흐를 수록

무엇을 찍을지, 어떻게 찍을지 보다도

사진에 담는 철학이 무엇인지, 의도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진이란 건 알면 알수록 너무 어려워 손에서 멀어지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철학, 도형과 미학에 관한 서적,

사진의 기법에 관한 서적들을

몇 십권 쌓아놓고,


퇴근 할 때 마다 주말마다 읽고 또 읽으며

철학을 담으면 담을 수록,

점점 사진은 더 어려워져 갔다.


그러다 어느 날 발견한 책이 바로


윤미네 집


이다.


한 교수님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작가인 분이

평생 가족의 모습과 딸의 모습을 낡은 필름 카메라에 평범하고 담담하게 담은 사진집을 보고


사진에 관한 나의 생각이

약간 자리 잡는 순간이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순간. 정성. 시간. 깊은 마음.


사진을 취미로 하는 입장에서,

감히 철학이나 이론을 논할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그저 사진이란 무엇일까.


2010년 이후 계속 사진을 취미로 해오면서도

나에게는 항상 어려운 과제였다.


그런 와중에 '윤미네 집' 만큼이나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사진집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집이었다.


사진 이론 수업을 처음 공부할 때

'앙리 까르띠에 브래송'의 사진들을 보면서 순간 포착된 길거리 사진들을 보기도 했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롤라이플랙스를 이용한

자연스러운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깊숙히

그 현장으로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카메라나 사진 기법은 그렇게 중요한 요인이 아닌데,

나는 제대로 좋은 사진이 무엇인지 모른 체로

너무 오랜 시간 취미로만 사진을 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대학 시절 사진 관련 수업에서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작가는 매일 자기 방안을 촬영했다. 시간에 따라 빛이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같은 것을 매일 촬영하는 노력이 결국 사진의 시리즈를 만들었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시간과 노력. 정성.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 깊은 마음.


그래서 나는 사진이나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길 때,

그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한 번의 촬영은 눈에 띄고 아름다울 수 있다.

포토샵을 이용해 색을 바꾸기도하고,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같이 쉽게 저장하고,

쉽게 변형시키고 쉽게 없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어렵게 담은 것.

정성스럽게 담아 쉽게 지울 수 없는 것들은

그것이 긴 시간 모였을 때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삶도,

그런 필름들 처럼

남들보다 어렵게, 정성스럽게 차곡 쌓여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젠가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게.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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