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방황하다 영국으로 오른 길 #4
코로나가 발생 하기 전
한 번씩은 모든 것을 던지고 여행을 떠날 때가 있었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이유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지인 중에 누군가는 그런 자유로움을 위해 승무원의 길을 택했고,
어떤 친구는 회사가 장기간 쉬는 날이 올 때마다 이번엔 어느 나라를 가볼까
고민하곤 했었다.
물론 조금 더 어렸을 때 비해,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 대다수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고민하는 것이 수동 필름을 사용할까, Digital 카메라를 가져갈까,
전부다 가져갈까, 혹은 영상 촬영용 카메라를 가져갈까.
이런 남들이 하지 않는 고민을 하곤 했다.
카메라를 모두 짊어 메고 가져가더라도
결국 매번 여행의 목적에 따라 딱 하나만 계속 사용하기도하고,
카메라가 많고
어깨가 아픈 만큼 무언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이번 영국 여행에서는 정말 가벼운 수동필름 카메라와
여러 종류의 흑백, 컬러 필름에 의지해서 제한된 환경 내에서
그 때 그 때 주어진 순간들을 담기로 했다.
어쩌면 담지 못하면 담지 못하는대로,
담기면 담기는대로,
'그것이 운명이겠지' 하면서.
흑백필름을 처음 사용하게 된 계기는 여러가지다.
컬러필름에서도 감도가 ISO100~800 등 다양하게 원하면 원하는대로 구할 수 있지만,
내가 특별하게 촬영할 환경이나,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는 이상
나는 보통 ISO100~ISO200의 컬러필름을 사용해왔다.
흑백필름의 경우 ISO400~ISO800정도로 수동필름에 감아넣고,
주로 야간에 많이 사용했었다.
혹은 해가 조금 내려간 오후나, 흐리고 어두운 날씨가 되면
여행 시에 범용적으로 사용하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잠시 컬러를 명암과 형태에 집중하고흑 싶을 때
사용한다.
알록달록한 컬러가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때로는 무채색의 필름에 묵직하게 담아낼 때는,
카메라를 잡은 내 손과, 내 눈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전문 촬영인도 아닌 나지만,
내 손에 주어진 촬영 도구가 50mm 단렌즈에 수동 필름 카메라,
그리고 ISO400 흑백 필름으로 고정되는 순간부터는
촬영해야 할 대상들을 볼 때,
형태와 빛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그 때부터는 여행 중에 보이는 길거리의
컬러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된다.
흑백 필름과 함께 걸어다니는 시간만큼은,
왠지 모르게 길거리의 이야기들에 집중하게 해준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쓸쓸히 앉아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이나, 건물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컬러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혹은 건물의 역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형태.
그런 것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London의 많은 광장이나 길거리가 그러하기도 했지만,
마침 오랜 시간에 걸쳐 도달한 캠브리지(Cambridge) 또한 그랬다.
여행의 함께한 사람 없이
나는 하루종일 비가 오는 캠브리지의 대학들을 구경하고,
아무도 없는 건물 사이사이의 골목길과
드넓은 캠퍼스, 잔디밭, 기숙사,
학교들 사이로 흐르는 강물들. 곳곳에 숨어있는 동물들을 보고 있자면,
그 색들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흐린 하늘과 갑자기 쏟아지는 비.
촉촉하게 젖은 영국의 골목길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2018년부터는 직장에 다니며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2021년인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해외 여행을 간 기억이 많이 없다.
2018년과 2019년까지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대학원을 통해 잠시 핀란드와 미국에서 경영학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잠시 휴식을 위해 일본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흑백 필름에 담았던 유럽은 이 때가 마지막이었다.
이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흑백으로 또는 컬러로
필름에 세상을 담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그저 수동 필름을 잘 감아 담는 그 과정 자체가
좋아서 필름에 담아 보려 노력하지만,
그 것에 깊은 의미와 무언가를 알차게 담기란
지금이나 그 때나 나에게는 어려운 주제다.
어쩌면 직장이나 인생을 사는 것도 매한가지.
그냥 즐기며, 평범하게 살면 되는 것을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