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kon FG-20, Film, UK Nikkon FG-20, Film, UK 영국 여행의 마지막 날,
한국으로 귀국하기 하루 전 어디를 여행하면
좋을까 숙소에서 밤 늦게 고민을 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내가 편안한게 머물던 풍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하고는,
다음 날 새벽 나는 케임브리지로 향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 아침 필름 카메라와 작은 우산을 담을 가방만을
들고 나는 숙소를 나섰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니
오늘은 정말 편안하게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겠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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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처럼,
나는 역에서 내려 무작정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일부의 사람들이 걷는 것 같기도
했고, 마지막 날이니 만큼
어떤 사진의 순간을 만날지 몰라서
음악을 들으면서 그냥 카메라에 의지한 체로
걷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길은 길었다.
구글 지도를 따라 걷고 또 걸어도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낯선 길을 향해
걷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저 계속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어딘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길을 가다가 거의 인적이 없는 길거리에서 작은 성당하나가 보였다.
거기에 들어가 조용히 마음 속으로 되새겼던 것 같다.
지금 보다 부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이 날 처럼 작은 성당이 아니라
한 번은 세인트 폴 성당에 들린 적이 있었다.
계획에 없었으나 그냥 무작정 세인트 폴 성당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영국이니까. 유럽이니까.
한 번은 들려야지 했는데, 세인트 폴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완전히
매료 되어, 거의 반나절을 그 곳에서 떠나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침 영어로 미사가 진행 중이었고,
미사가 끝나고 영국인 신부님께 내가 겪고 있는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털어 놓으니,
친절히 나에게 축복을 빌어주셨다.
나는 그곳의 옥상까지 모두 올라가보고, 그 곳의 예술품, 장식 하나하나 까지
모두 감상하고 나서야, 힘겹게 그 자리를 떠났었다.
Nikkon FG-20, Film, UK 영국에 있는 동안
성당에서 받은 친절함과
강렬함 때문인지,
낯선 땅에서의 작은 성당은
조용히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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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로 보이는 느낌들이 물씬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대학의 건물들이 보이고,
수 많은 인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 비가 조금 씩 오기 시작했는데,
비가 내렸다가 오지 않았다를 반복하면서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을 택했다.
정확히 몇 개의 대학들이 그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곳 마다 여러 캠퍼스가 있는 듯이 보였다.
가능하면 많은 곳을 방문하기도 했고,
곳곳에 초를 올려두는 곳이 나오면,
조용히 돈을 내고 불을 붙여 올려두었다.
Nikkon FG-20, Film, UK Nikkon FG-20, Film, UK Nikkon FG-20, Film, UK 또 하나의 특징이
근처에 강을 따라 배를 타는 곳이 있었는데,
혹시 관광지에서 바가지를 당할까봐,
한 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한 번 배에 타지 않으면
한국에 돌아가 평생 후회 할 것 같아
뱃표를 받아 기다리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탑승객 본인들이 직접 배를 운전해서 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고
나의 경우는 배를 타며 직접 설명해줄 가이드가
함께 탑승하며 노를 저어주었다.
뭔가 라디오처럼
이탈리아의 강이 흐르는 도시에 뱃사공이 노래를 부르듯
가이드가 노를 저으며 계속해서 자연 속을 통과하였다.
대학이나 기숙사 건물들이 보였고,
바로 내 옆으로는 오리들이 헤엄쳐서 다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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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지만,
이 날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 그저 걷고 또 걸었던 풍경들.
또 배를 타고 지나간 풍경들.
그렇게 자연과 대학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녹색의 캠퍼스에
소와 오리가 보이고,
나무와 강이 우거진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곳에서 졸업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평생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한국의 직장에서 일하는 삶.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한 사람의 삶.
서로 얼마나 다를지 아니면 같을 지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일어났다.
Nikkon FG-20, Film, UK Nikkon FG-20, Film, UK 살짝 비에 젖었다가,
저녁 도시로 돌아와 어느새 다시 말라버린 옷을 걸치고
역 근처에서 구경을 하다가
나의 마지막 영국에서의 저녁을 위해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기간 동안
선배로부터 너무 많은 저녁을 대접 받은 터라,
오늘은 내가 한 턱을 내려고 했는데,
마지막 날 저녁 장소는 선배의 아파트였다.
계속 영국의 음식만 먹다보니,
벌써 그러워진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우리는 근처 슈퍼에 가서 삼겹살과 야채 등을 잔뜩 사들고 왔다.
큰 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내가 결제하기로 했고,
선배의 아파트에서 우리는 한국의 향기가 물씬 나는 식재료를 풀어 놓았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나는 잠시 영국 주거지의
고요한 풍경을 감상했고,
선배는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우리는 식탁에 앉았고
나는 오랜만에 내 속을 정화해줄만한
한국 음식들을 입에 넣고 있었다.
담백한 쌀이 입을 넘어갔고,
상추와 고추장, 그리고 삼겹살이 내 입에 가장 잘 맞다 느꼈다.
영국에서는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주거 문제로 인하여 남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선배의 말이었다.
겉으로 좋아보이는 것도,
화려해보이는 것도,
결국 한국에서의 삶이나 영국에서의 삶이나,
현실은 현실일 뿐.
내가 힘들다 여기던 것들도,
선배의 고민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다섯 번째 날의 영국 여정을 앞두고
네번 째 날 저녁,
선배가 퇴근 쯤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이제 한국 음식이 그리워 질 때가 된 것 같은데?
땀흘리며, 사진을 찍고
걸어다니느라 인지하지 못했지만,
선배가 아마 내가 슬슬 한국 음식이 그리워 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보다.
아마 해외에서 타향 살이를 하는
선배가 나보다 먼저 경험으로부터 얻은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저녁엔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영국 길거리에 한 한인 식당을 찾아갔고,
거기서 떡볶이나 얼큰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분도 영국 억양이 섞인 발음으로
어느 정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았고,
우리는 단무지나 김치가 있는 밑 반찬을 주문했다.
거의 3일에서 4일 동안의 저녁을 선배가 산 거나 다름 없었는데,
우리가 주문한 밑반찬 세트가 거의 만 원에 가까운 액수였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무료 셀프'로 지칭되던 반찬들이
어찌나 비싸던지 괜시리 날 위해
한 인 식당을 함께 와 준 선배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새 마지막 날 저녁,
노을은 저물어 가고,
선배와 마지막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다음 날 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는 다른 이의 삶을 무의식적으로 부러워하고,
화려함 앞에 나의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각자의 아픔과 힘겨운 나날을 계속하는 와중에,
어찌되었든 나는 한국에 돌아가 나의 삶을 계속 해나가야했다.
조금 씩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으며, 조금 씩.
마치, 영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건물들 사이에서
결국 삼겹살에 고추장, 그리고 맥주 한 잔에 기뻐하는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