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오프닝 전날의 비
비가 왔다.
간판 불빛이 골목 웅덩이에 잔상으로 떨어져 물결을 흔드니, 어젯밤 계산한 대관료 항목들이 그 물결 속에서 자꾸만 늘어난다. 대관료, 반입·반출, 조명 추가, 보험, 청소, 경비, 행사용 의자… 숫자마다 빗방울 하나씩 달린 느낌이었다. 나는 전시 오프닝 하루 전날의 작가였다. 그리고, 통장 잔액은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전시장 문을 열자, 흰 벽은 아직 무표정했고, 바닥엔 버블랩이 눈처럼 쌓여 있었다. 큐레이터는 바쁜 목소리로 “작가님, 작품 걸기 전에 서류부터요”를 반복했다. 설명자료, 작가노트, 가격표, 저작권 동의서, 작품 반입 목록. 내 작품보다 먼저 벽에 걸려야 할 것이 서류라면, 오늘 나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작가 없는 도록이 존재합니까?”
어젯밤 쓴 성명서 문장 한 줄이 노트 속에서 번졌다. 지우개로 문장을 문지르자 연필가루가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손톱 밑에 먹물이 찼다. 그 먹물은 지난달에 미뤄둔 도록비였다. 디자인 업체에 보낸 견적서가 스팸함을 뚫고 다시 돌아왔다. “옵션을 줄이셔도, 종이는 최소 이 정도 두께가 나와야…” 두께를 줄일 수 없는 게 종이만은 아니었다. 내 체면도, 내 자존감도, 줄일 수 없는 두께를 갖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으면 컴맹이 된다. 정부지원 신청 페이지는 타자 속도를 시험하는 게임처럼 느려졌고, 버튼은 어디서나 회색이었다. ‘승인’은 늘 회색이었다. “작성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뒤로 가기를 눌러 다시 시도하세요.” 뒤로 가기. 뒤로 가기는 참 빠르다. 사람을 한 계절쯤 훅 밀어버릴 만큼.
그래서 나는 다시 몸으로 벌었다. 새벽 쓰레기 수거차에 딸려 나가 파지 더미를 묶고, 오후에는 식당 설거지를 하며 접시의 기름을 지웠다. 기름은 지워지는데, 도록비는 지워지지 않았다. 도마 위 물기처럼 끝끝내 남았다. 밤에는 공사장으로 나가 돌 깨는 소리를 듣고, 귀에 박힌 리듬에 맞춰 스케치북에 망치의 궤적을 그렸다. 내가 원하는 선은 아니었지만, 그 선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입김이 하얗게 새는 겨울, 손등이 갈라져 피가 묻은 장갑으로 나는 ‘선’을 그었다. 그 선이 내 작품의 붓질보다 더 뚜렷했다.
오프닝 전날, 나는 마지막 작품을 벽에 기대놓고 뒤로 물러났다. 비가 유리창을 치며 전시장 조명을 흔드는 동안, 그림 속 바다가 실제보다 더 젖어 보였다. 바다를 그리며 나는 단 한 번도 수영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물에 뜨는 법’을 모르는 사람의 바다는 언제나 숨이 찼다. 오늘도 그랬다.
“작가님, 가격표 붙여야 해요.”
스태프가 투명 테이프를 들고 서 있었다. 내 작품들은 빚의 단위로 이름이 바뀌었다. 재료비, 대관료, 도록비, 광고비, 오프닝 행사비, 기념품비, 식사비… 합계. 합계는 늘 내 월세와 닮았다. 금액이 클수록, 누군가의 방이 내 그림을 삼켜버리는 속도가 빨랐다.
나는 가격표를 붙이기 전, 작품 제목 라벨을 먼저 확인했다.
〈바다의 하중〉.
오타가 없었다. 다만, 제목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나는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바다의 하중은 사실 나의 하중이 아니냐고.
오프닝 초대장은 이미 발송되었다. 그러나 오프닝 행사비가 모자라 와인을 뺄 수밖에 없었다. 탄산수와 종이컵, 편의점 치즈 몇 개. 나는 치즈 비용을 계산하며, 지난달 전기를 아끼려고 형광등 대신 스탠드를 켰던 밤들을 떠올렸다. 붓끝이 더러워지면 물컵을 두 번 흔들지 않고 한 번만 흔들던 징크스도. 그것이 예술가의 미학이었는지, 가난의 습관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밤 열한 시, 비는 여전히 유리창에 점자를 새겼다. 누군가의 읽을 준비가 된 침묵처럼. 그때 문이 열리고, 우비를 벗으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전시장 한가운데서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을 털고, 조심스레 말했다.
“청소하러 왔습니다.”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요. 이 그림 하나만 걸면 끝나요.”
그는 빗물 묻은 걸레를 비닐에 넣고 내 쪽으로 다가와, 무심코 그림을 훑었다. 돌 깨는 공사장에서 본 손들이었다. 손등이 갈라져 있었다. 우리 손은 서로를 알아본다. 노동의 손과 노동의 손은, 예술의 손보다도 빨리 악수를 한다.
“이건, 바다네요.”
“네.”
“근데 바다가 아니라, 뭐랄까… 벽 같아요.”
그는 내 그림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내 내장이 천천히 수축하는 소리가 들렸다. 벽. 나는 그 단어를 평생 싫어했다. 그러나 그 단어야말로 오늘 내가 그린 전부였다. 걸릴 수 있는 벽, 막아서는 벽, 되돌리는 벽. 그리고 내가 오르려는 벽.
“작가님.” 그가 말했다. “내일 오프닝이면, 제가 오늘은 청소비를 받지 않을게요. 대신, 저 이 그림 앞에 다 쓰고 간 메모 하나만 붙여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검은 전표 뒷면이었다. 그는 볼펜으로 무언가를 썼다. 글씨는 삐뚤었지만 힘이 있었다.
“나는 돌을 깹니다. 그런데 오늘, 벽이 깨졌습니다.”
— 관람객이 되기로 마음먹은 청소노동자, 첫 관람의 기록.
그는 메모를 그림 옆에 조용히 붙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프닝, 잘하세요. 저도 내일 시간을 좀 내 보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유리창의 점자들이 한 줄씩 지워졌다. 나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빚더미, 대관료, 도록비, 광고비, 기념품비, 오프닝 행사비, 식사비… 그 단어들이 내 목을 조르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왜냐하면, 오늘 밤 처음으로 한 사람의 방이 아닌 한 사람의 마음에 내 작품이 걸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성명서 노트의 첫 문장을 다시 펼쳐 썼다.
작가 없는 갤러리는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관객 없는 작가 또한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의 벽을 조금씩 깬다.
그렇게 쓰고 나서, 나는 마지막 가격표를 붙였다. 합계 옆에 작은 별표를 붙이고 조그맣게 덧붙였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 걸렸다면, 그것으로 한 편은 구해졌습니다.
비가 잦아들었다. 전시장 안의 조명은 비로소 내 그림을 고르게 비추었다.
오프닝 전날의 밤, 나는 서류철을 덮고, 문을 반쯤 열어 둔 채로 귀를 기울였다.
혹시 누가 또 들어와, 자신의 노동으로 내 그림을 읽어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그때 바람이 문을 더 열었다.
나는 알았다. 내일, 이 전시는 오프닝 없는 오프닝으로 시작될 거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27편의 마지막 날, 아무 데도 걸리지 못한 작품이 누군가의 방에 걸릴 거라는 걸.
— 끝 (제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