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록의 그림자

by FortelinaAurea Lee레아

제2편. 도록의 그림자


인쇄소의 불빛은 늘 푸르스름했다.

사진작가 수진은 그 빛을 마치 어두운 바다처럼 바라보았다.

그녀의 사진은 바다를 찍은 것이 많았지만, 정작 지금 그녀 앞에서 인쇄되는 건 자신의 바다가 아니라 도록의 바다였다.


“옵션을 줄이셔도, 종이는 최소 이 정도 두께는 나와야 합니다.”

인쇄소 직원이 기계적으로 말했다.

수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고 있었다.

도록 제작비: 280만 원.

배송비: 별도.

사진 촬영에 들어간 필름값과 현상비, 렌즈 할부금까지 더하면…

그녀는 손끝이 떨려 도록 시안을 잡지 못했다.


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에 나갔다.

카운터 옆 택배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오늘도 고생하십니다.”

택배기사 한 명이 땀에 젖은 얼굴로 들어왔다.

수진은 무심코 그의 손목을 보았다.

까맣게 그을린 손목, 그 위로 빛나는 시계 자국.

순간, 그녀의 눈앞에 플래시가 터졌다.

‘저 손목, 저 선명한 자국… 사진으로 남겨야 해.’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카메라는 사치였다.

알바비가 모여야 도록비 일부라도 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도록은 인쇄소에서 나왔다.

하얀 표지 위에 찍힌 그녀의 이름, <수진 개인전>.

그러나 도록을 펼치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진은 분명 그녀가 찍은 것이었지만, 종이 위에 얹히자마자 빛이 사라진 듯 탁해 보였다.

마치 사진의 그림자가 도록 속에 갇혀버린 듯했다.


“작품은 작품으로 보존돼야 해.

도록은 기록일 뿐인데, 왜 나는 기록을 위해 작품을 포기해야 하지?”


수진은 도록 한 권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언니가 찍은 거예요? 예쁘다.”

그녀의 동생이 집안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왜 예뻐?” 수진이 묻자, 동생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진짜 같아. 내가 거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이후, 수진은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빛을 찍지 않았다.

늘 그림자를 찍었다.

공사장의 거푸집 그림자, 주차장의 자동차 그림자, 밤 편의점 앞 택배 상자의 그림자.

그녀는 깨달았다.

“도록 속에서는 그림자가 오히려 더 살아남는다.”


전시 날, 갤러리 벽에는 그림자 사진들만 걸렸다.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전부 그림자만 있지? 피사체가 없네.”

그러나 한 노부인이 말했다.

“저기, 내 젊었을 때 모습 같네. 빛은 사라졌어도 그림자는 남더라고.”


수진은 그 말을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록은 여전히 빚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사진은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전시가 끝난 후, 도록 한 권은 팔리지 않고 구석에 쌓여 있었다.

수진은 그 위에 펜으로 한 문장을 적었다.


빛은 사라져도, 그림자는 남는다.

그림자가 곧, 나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택배 상자를 들었다.

무겁고도 가벼운, 도록의 그림자와 함께.


— 끝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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