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스테이트먼트
지원서를 내기 전날 밤, 민주는 원고지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조각가인 그녀는 늘 망치와 정을 다루는 데 익숙했지만, 펜을 잡으면 손끝이 굳어버렸다.
작품 설명문, 이른바 ‘스테이트먼트’.
그 한 장의 글이 공모전 합격을 좌우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깊은 무력감에 빠뜨렸다.
“나는 글을 쓰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왜 작품보다 글이 먼저냐.”
그녀는 망치질로 바위에서 불꽃을 튀길 때보다 더 절망적인 얼굴로, 문장 몇 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 작품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며…’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경계를…’
모두 빛바랜 교과서 같은 문장이었다.
그녀의 조각에는 살아 있는 호흡이 있었지만, 문장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날, 그녀는 작업실 대신 건설현장에 있었다.
대관료를 마련하기 위해 선택한 아르바이트였다.
굴착기가 땅을 파헤치고,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굉음이 울렸다.
민주는 그 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문득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콰앙, 우르르, 탕, 쨍그랑…’
‘사람의 발자국, 철근의 비명, 먼지의 기침…’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 글은, 지금까지 억지로 써 내려간 어떤 문장보다도 자신의 조각과 닮아 있었다.
돌을 깰 때 튀어나오는 소리, 파편이 떨어지는 울림, 그 속에 깃든 리듬.
그것이 바로 그녀의 스테이트먼트였다.
며칠 뒤, 심사위원 앞에서 그녀는 준비한 원고 대신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굴착기와 망치, 먼지와 금속의 충돌음이 스피커를 가득 채웠다.
처음에는 심사위원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소리가 이어질수록, 그들의 시선은 조각 사진에서 다시 녹음기로 옮겨갔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 민주는 단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것이 제 작업노트입니다. 저는 돌을 깰 때, 글 대신 소리를 남깁니다.”
심사 결과는 합격도, 불합격도 아닌 ‘보류’였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처음으로 글이 아닌 자신의 언어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작업실에서 그녀는 조각 하나를 마무리하며 작은 메모를 붙였다.
스테이트먼트: 오늘의 소리.
돌이 깨지는 순간, 나는 태어난다.
며칠 뒤, 현장 동료가 작업실에 놀러 왔다.
그는 작품 옆에 붙은 메모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거라면, 나도 이해하겠다. 그냥 우리가 같이 일한 소리잖아.”
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은 거창한 단어보다, 때론 삶의 소리에 더 가까운 것이니까.
스테이트먼트를 요구받는 시대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글쓰기에 서툴렀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조각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귀로 읽으면 되는 것을.
그녀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쿵, 쾅, 징, 탕—
그 소리는 오늘도 그녀의 조각 노트였다.
— 끝 (제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