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기념품의 나라
전시 준비의 마지막 단계, 큐레이터가 말했다.
“작가님, 요즘은 작품보다 굿즈가 더 잘 팔려요.
엽서, 머그컵, 에코백… 기념품 없으면 관객들은 그냥 가버려요.”
화가 태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캔버스보다, 붓보다, 이제 머그컵과 에코백이 더 무겁게 눌리고 있었다.
기념품 제작 견적서를 받아 든 날,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엽서 인쇄 20만 원, 머그컵 제작 30만 원, 에코백 프린팅 40만 원,
거기에 포장비와 운송비까지 합치면 이미 작품 재료비를 훌쩍 넘겼다.
“내 그림은 아직 팔리지도 않았는데…
기념품부터 팔아야 작가로 보이는 건가?”
그는 절망했다.
붓으로 그린 한 점의 선보다, 기계 프린터로 찍어낸 수백 장의 그림자가 더 중요한 세상.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이제 ‘예술의 나라’가 아니라 ‘기념품의 나라’ 같았다.
오프닝 날, 그의 작품은 벽에 걸렸지만, 관객들은 대부분 굿즈 테이블 앞에 몰려 있었다.
“에코백 디자인 귀엽다!”
“머그컵 하나 살까?”
“이건 그냥 쓰기 좋은 기념품이네.”
태현은 웃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삼켰다.
테이블 위에 놓인 굿즈들이 팔려 나가는 동안, 정작 그의 그림은 아무도 바라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작품은 그대로 그림자처럼 서 있었고, 그 그림자의 복제본만이 손에 들려 떠나갔다.
한 관람객이 굿즈를 고르다 물었다.
“작가님, 이 머그컵은 몇 개 한정이에요?”
태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한정은… 제 영혼이죠.
이 컵에는 그림이 아니라, 제 시간을 갈아 넣었습니다.”
그러나 관람객은 웃으며 말했다.
“아, 너무 진지하시다. 그냥 컵은 컵이죠. 쓰다 깨지면 또 사면되잖아요.”
그 말에 태현은 손이 떨렸다.
붓을 잡던 손이, 이제는 머그컵 포장 박스를 접고 있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다가왔다.
“아저씨, 그림은 안 팔아요?”
태현은 놀라서 아이를 바라봤다.
“그림이요?”
“네, 저는 컵 말고 그림을 갖고 싶어요.
벽에 있는 저 파란색이, 바다 같아서요.
제가 매일 그걸 보면, 학교에서 덜 힘들 것 같아요.”
태현의 눈이 붉어졌다.
그는 아이에게 작은 스케치를 건넸다.
“이건, 너만을 위한 바다야.”
아이는 그것을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갔다.
그 순간 태현은 알았다.
굿즈는 쉽게 깨지고 버려지지만, 그림은 누군가의 마음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전시는 결국 기념품 판매로만 수익을 냈다.
그러나 태현은 빚만 더 늘었다.
남은 에코백과 머그컵은 창고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이 나라는 기념품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린다.
그 문장은 기념품보다 더 단단한 그의 다짐이었다.
태현은 다시 캔버스를 펼쳤다.
이번에는 굿즈용 그림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바다가 되어줄 그림을 그리기 위해.
— 끝 (제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