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없는 화가

by FortelinaAurea Lee레아

8편. 재료 없는 화가


석고 냄새가 가득한 작은 방.

화가 인철은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지만, 붓을 들 수 없었다.

물감이 없었다.

아크릴 한 세트조차 살 돈이 없었다.


“물감이 없으면 화가가 아니란 말인가?”

그는 중얼거리며 주머니 속 잔돈을 세어 보았다.

천 원짜리 네 장. 물감 한 색도 살 수 없는 돈이었다.


다음 날, 그는 근처 철거 현장으로 향했다.

부서진 벽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인철은 작은 비닐봉지에 벽돌 가루를 퍼 담았다.

그리고 버려진 못과 철사, 낡은 칫솔을 주워 작업실로 돌아왔다.


벽돌 가루에 물을 섞어 칠하면, 탁한 붉은빛이 퍼졌다.

그는 낡은 칫솔을 붓 대신 써서 선을 그었다.

피처럼 번진 색, 흙처럼 무거운 선.

그것은 물감보다 더 날카로운 기록 같았다.


며칠 뒤, 그는 동네 공터에서 흙을 퍼왔다.

비에 젖은 흙은 손바닥에 묻어나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그는 그 흙을 손으로 캔버스에 발랐다.

손바닥으로 문질러 얼굴을 만들고, 손가락으로 눈과 입을 그려 넣었다.


“이건 사람이다.

사라지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


그 얼굴은 두렵도록 생생했다.

마치 흙 속에서 다시 태어난 누군가가 캔버스 위로 올라온 것 같았다.


전시 날, 그의 작품은 벽 한쪽에 걸렸다.

관객들은 갸웃거리며 속삭였다.

“이게 미술이야? 그냥 벽돌 자국 아니야?”

“흙을 발라놓은 거잖아. 너무 지저분하다.”


그러나 한 노인이 작품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다가 인철에게 다가와 말했다.

“내 어린 시절 집이 철거될 때, 저런 벽돌 가루가 날렸지.

그걸 보니 그때 냄새가 나네. 고향이 떠오른다네.”


인철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노인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들은 모든 비평보다 깊게 가슴에 박혔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은 팔리지 않았다.

도록에도, 기사에도 그의 이름은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밤에 다시 벽돌 가루를 갈아 물에 섞었다.

이번엔 더 조심스럽게, 더 느리게, 한 선 한 선을 쌓았다.


“내 물감은 가난이다.

내 붓은 잔해다.

그래도 나는 화가다.”




창고 같은 방 한쪽 벽에는 벽돌 가루와 흙으로만 그린 얼굴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그 얼굴들은 모두 울고 있는 듯했고, 웃고 있는 듯했고, 말 없는 듯 노래하는 듯했다.


인철은 벽 앞에 앉아 노트에 적었다.


재료가 없는 건, 내가 없는 게 아니다.

세상에 버려진 재료로도, 나는 사람을 다시 그린다.


그리고 그는 다시 철거 현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그의 물감은 쓰레기였고, 그 쓰레기 속에서 다른 세상이 태어나고 있었다.


— 끝 (제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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