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편. AI가 그린 사과
전시 준비 막바지에, 은별은 충격적인 제안을 받았다.
“작가님, 요즘은 관객들이 AI 그림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이번 전시에선 AI가 그린 작품도 함께 걸어보시죠. 비교가 재미있을 거예요.”
갤러리 큐레이터의 말은 농담 같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최근 경매에서는 AI 그림이 예상가의 수십 배로 낙찰되기도 했다.
은별은 입술을 깨물며 되물었다.
“그럼 제 그림은 뭐가 됩니까?”
큐레이터는 웃으며 대답했다.
“작가님 그림도 좋지만, 관객은 ‘이게 AI가 그린 건가?’ 그걸 궁금해하거든요.”
전시 첫날, 하얀 벽에 두 개의 사과 그림이 걸렸다.
하나는 은별이 밤새워 그린 유화.
붓질마다 땀과 고뇌가 배어 있었고, 사과 껍질의 미묘한 빛을 살리려 수십 번 덧칠한 작품이었다.
다른 하나는 AI가 단 몇 초 만에 생성한 사과.
매끈하고 완벽했으며, 잡티 하나 없는 디지털의 색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이건 사람이 그린 거겠지?”
“아냐, 저게 AI 그림일걸.”
“와, AI가 더 완벽하네.”
은별은 그 말들을 들으며 손끝이 떨렸다.
밤이 되어 전시장이 텅 비자, 은별은 두 사과 앞에 서 있었다.
AI가 그린 사과는 여전히 매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과는 어둠 속에서 묘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불완전한 붓질, 약간 삐뚤어진 곡선, 덧칠된 흔적 속에
은별 자신의 호흡과 체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AI의 사과는 빛나지만, 내 사과는 썩는다.
그러나 썩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
며칠 후, 은별은 전시장에 놓인 방명록에서 한 장의 쪽지를 발견했다.
글씨는 서툴렀지만 진심이 묻어 있었다.
“AI 사과는 완벽했지만, 선생님의 사과에서는 냄새가 났습니다.
빛, 흙, 땀, 그리고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생명의 냄새요.
그래서 저는 사람의 사과가 더 오래 제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은별은 그 글을 읽고 눈을 감았다.
누군가는 알아보았구나.
AI가 그릴 수 없는,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썩어가는 아름다움을.
전시가 끝나고, 두 그림은 다른 길을 갔다.
AI 사과는 데이터 속으로 사라져 갔고,
은별의 사과는 여전히 그녀의 작업실 한쪽에 남아 있었다.
붓자국마다 그녀의 피로와 눈물이 스며 있었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변색되었다.
그러나 은별은 그 변화를 사랑했다.
AI는 순간의 완벽을 만들지만,
인간은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나는 오늘도, 썩어가는 사과를 그린다.
그녀는 다시 붓을 들었다.
사과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 끝 (제10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