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편. 식당의 설거지
스테인리스 싱크대 위, 뜨거운 물줄기가 쉼 없이 쏟아졌다.
그릇 위의 기름기와 음식 찌꺼기가 흘러내렸고,
허리 굽힌 채 고무장갑을 낀 한 여인의 손이 그 사이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의 이름은 다혜.
한때는 유리 위에 반짝이는 빛을 그려내던 화가였지만, 지금은 작은 식당의 설거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수북한 접시들을 쌓아 놓고 문득, 그녀는 눈앞에 퍼지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컵을 헹굴 때마다 생기는 작은 파문.
국그릇에 맺히는 거품의 무늬.
그것들은 다혜에게 바다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내가 물감이 없어도, 물이 있잖아.”
그녀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물 위를 살짝 흔들며 상상했다.
저 물결이 선이 되고, 빛이 되고, 결국 그림이 된다고.
식당 주인은 몰랐지만, 다혜는 매일 설거지통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루는 접시를 닦다 말고,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나는 왜 이 물결을 갤러리 벽에 걸 수 없는 걸까…”
재료비, 대관료, 도록비… 그 모든 것 때문에 그녀는 이미 붓을 놓은 지 오래였다.
그림 대신 그릇을 닦으며, 삶은 하루하루 설거지 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눈물조차도 설거지 물에 섞여 반짝였다.
그 반짝임을 본 순간, 다혜는 마음속에서 작은 불씨가 살아나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저녁, 식당에 온 초등학생 소년이 설거지하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가왔다.
“아줌마, 물에서 그림 그리세요?”
다혜는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접시에 비친 거 봤어요. 파도가 있는 것 같았어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림은 꼭 벽에 걸려야 하는 거예요? 저는 여기서 보는 게 더 멋진데요.”
그 말에 다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 같던 ‘관객’이, 설거지통 앞에서 나타난 것이다.
며칠 후, 다혜는 일부러 접시를 한쪽에 쌓아 두고 물을 가득 받아 두었다.
그리고 설거지통 위에 작은 초를 하나 켜 두었다.
물결 위에 초빛이 흔들리며, 반짝이는 그림이 생겨났다.
소년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오프닝이야. 내 전시는 설거지통 안에서 열려.”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물 위를 바라보았다.
그 반짝임 속에서 그는 바다를, 별을, 자신만의 세계를 보았다.
전시는 없었고, 도록도 없었으며, 돈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다혜는 알고 있었다.
예술은 꼭 벽에 걸려야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오늘도 설거지 속에서 빛을 그린다.
누군가 그걸 본다면, 그것만으로 전시는 완성된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물을 틀었다.
그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파도가 태어나고 있었다.
— 끝 (제1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