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편. 검은 장우산
“예술가의 노년과 기억, 그리고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검은 장우산...
이제 나이가 여든을 넘겼다.
기력이 떨어졌고, 허리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나를 밖으로 이끄는 게 있다면,
그건 그림 냄새다.
요즘은 지팡이 대신 오래된 검은 장우산을 짚는다.
비가 오지 않아도 그 우산을 들고 다닌다.
사람들은 내게 “날씨 좋은데 왜 우산을 들고 다니세요?” 묻지만,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건 비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 세월을 버티려는 거요.”
전시장 앞에서
오늘도 전시장 앞에 섰다.
새로 열린 신진 작가들의 전시다.
유리문 너머로 젊은 얼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플래시가 번쩍인다.
나는 우산을 짚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벽마다 걸린 그림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색은 선명했고, 질감은 거칠었다.
젊음이란 참 솔직하다.
숨을 참지 않고, 한 번에 다 토해내는 법을 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오래전 내 작업실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전부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림이 아니라 삶 자체를 긋고 있었다.
녹은 크레파스의 기억
나는 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물감 대신, 손에 닿는 그 감촉이 좋았다.
문방구 앞에서 버려진 크레파스를 주워다 녹이고,
다시 색을 섞어 새로운 선을 만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쓰다 버린 색조각들,
그것이 내 팔레트였다.
가끔은 그 냄새가 너무 독해서,
마스크를 써도 숨이 막혔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숨보다 그림이 더 필요했으니까.
어느 날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폐에 구멍이 났습니다. 이젠 그만 그리셔야 합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침대 위에서 병원 제공 산소호흡기를 쓰고
작은 스케치북을 꺼냈다.
손이 떨려서 선이 삐뚤어졌지만,
나는 그렸고, 그려야 했다.
“아파도,
이 선이 멈추면 나는 사라진다.”
비 오는 날의 전시
며칠 전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나는 검은 장우산을 들고 전시장으로 다시 갔다.
이번엔 신진 작가 중 한 명이 내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제 그림 좀 봐주세요.”
그는 서른 즈음의 젊은 작가였다.
작품은 도시의 폐허 위에 핀 한 송이 꽃이었다.
“이건 절망 속에서도 피는 희망이에요.”
그가 말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예술은 늘 그런 거야.
죽음 옆에 서 있으면서도,
살아 있으려는 몸부림이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시장 천장 유리창을 타고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는 검은 장우산을 펴서 그 아래에 섰다.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내 젊은 날의 꿈이 천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작업
밤이 되면 여전히 작업실로 돌아온다.
이젠 숨이 가쁘다.
기침을 하면 가슴속이 쿵쿵 울린다.
하지만 붓을 놓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반쯤 녹은 크레파스들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녹이고, 색을 섞는다.
빨강과 파랑, 검정과 흰색이 섞이며
이상한 회색이 만들어진다.
그건 마치 내 인생의 색 같다.
나는 그 색으로 검은 장우산을 그렸다.
비 속에서 반쯤 젖은,
그러나 여전히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과 함께.
그림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비가 오든,
세월이 쏟아지든,
나는 아직 서 있다.”
며칠 후,
내가 낸 그림이 지역 갤러리의 ‘노년 작가전’에 걸렸다.
관람객들은 그저 지나쳤다.
누군가 말했다.
“색이 좀 탁하네요. 기운이 없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미소 지었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운이 빠진 게 아니라,
기운을 다 쏟은 그림이었으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는 다시 검은 장우산을 짚고 걸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이 불었다.
우산이 살짝 흔들렸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늘 그늘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게 예술가의 마지막 역할이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잇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처럼.
— 제23편. 끝 (검은 장우산)